올림픽 챔피언들의 숙소 태릉선수촌, 역사속으로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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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릉선수촌의 역사 1966년 만들어진 태릉선수촌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 스포츠 정책의 산물이다. 변변히 자랑할 것 없는 정권은 현대식 종합훈련시설에서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선수를 양성했다. 우수 자원을 발탁해 속성으로 키운 압축성장식 국가스포츠 모델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해방 후 첫 금메달을 시작으로 오늘날 한국이 올림픽 세계 10위권 국가로 자리잡는데 기반이 됐다. 1948년 런던 올림픽 이래 1964년 도쿄 올림픽까지 금메달 없이 9개의 메달을 따는 데 그쳤지만 그 뒤부터 지금까지 여름 올림픽에서 255개의 메달을 일궈냈다. 태릉은 조선 중종의 왕후인 문정왕후(태릉)와 명종과 왕비 인순왕후(강릉)의 묘역이지만 국민들은 ‘태릉’ 하면 선수촌을 먼저 떠올린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미정 용인대 교수는 “태릉선수촌이 없어지면 내 역사도 사라진다”고 했다.
■ 보존 대상은 무엇? 대한체육회는 2008년 한국 근현대 스포츠의 100년 가까운 역사를 담고 있는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지고, 국적도 없는 디자인센터로 초토화된 전례가 있기 때문에 태릉선수촌 보존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50년 이상 된 태릉선수촌을 근대문화재로 등재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신청했고, 보존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앞으로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 존치 논리를 개발할 예정이다. 김승곤 대한체육회 정책연구센터장은 “출범 초기부터 핵심 구실을 해온 월계관, 개선관, 행정동, 챔피언하우스를 비롯해 8개 정도의 시설은 기본적으로 역사적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릉 묘역에 인접한 스포츠개발원과 오륜관 필승관의 철거에는 동의하고 있다. 다만 400m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은 지금까지 100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고, 수도권에 밀집한 빙상 선수들의 메카여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남겨둘 수 있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 태릉·강릉과 태릉선수촌 공존 가능한가? 태릉선수촌은 태릉과 강릉 사이에 9만평 규모로 들어가 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독재정부 시절 무단으로 선수촌을 세워 태릉과 강릉의 맥을 끊었다. 유네스코와의 약속도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시설만 남기고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근대건축사)는 “근현대 문화유산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다. 오늘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삶의 흔적은 곧 역사가 된다. 문화유산은 이제 시간의 크기가 아니라 당대의 대표성으로 바라봐야 한다. 왕릉이 조선을 대표한다면, 태릉선수촌은 1960~70년대 한국사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고광헌 한림대 교수(언론학)는 “유네스코 유산의 보편성도 중요하고, 태릉선수촌의 역사성도 중요하다. 사안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태릉선수촌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 눈물, 역사조차 문화유산으로 여길 수 있는 시야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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