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20편 (20/2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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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20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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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술집을 경영하면서도, 어떤 온더록에도 철학은 있 다, 하고 생각하면서 8년 간 매일 온더록을 만들었다 나는 학생 때부터 공부를 하기 싫어해서 성적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편이지 만, 그래도 '영문 일역' 참고서를 읽는 것만은 예의적으로 좋아했다. '영문 일역' 참고서의 어던 점이 그렇게 재미있느냐 하면, 거기에는 예문이 잔 ㅉ 실려있기 ㄸ문이다.
이 예문을 하나씩 하나씩 읽거나 외우거나 하기만 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그런 일을 게속하다 보니 어느틈엔가 극히 자연스럽게 영어 원서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교의 영어교육의 문제접이 있다고 트집 을 잡는 것은 아니지만, 전치사라든가 동사변화 같은 것을 아무리 정확히 암기 한다 해도 원서는 읽을 수가 없다.
나는 그 무렵에 외운 예문을 지금도 몇 가지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머 셋 몸의 '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은 있다"고 하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 앞 뒤 문장이 상당히 긴데, 그건 잊어버렸다.
요컨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매일 계속하다 보면 , 거기에서 자연히 철학이 생겨난다고 하는 추지의 문장이다.
여 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어떤 립스틱에도 철학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고교시절에 서머셋 몸의 이문장을 읽고, '으음, 인생이란 그런 거로구나' 하고 상당히 순진하게 감동했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술집을 경영하면서도, '어떤 온더록에도 철학은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8년 간 매일 온더록을 만들었다.
그런데 온더록에 정말로 철학이 있느냐 하면, 대답은 틀림없이 '있다'이다.
물 론 이 세상에는 맛있는 온더록과 맛없는온더록이 있겠지만, 맛있는 쪽의 온더록 에는 확실히 철학이 있다.
온더록이란 얼음 위에 위스키를 따르는 것 뿐이잖으 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얼음을 쪼개는 방법 하나로도 온더록의 품위와 맛이 확 달라지는 것이다.
얼음도 커다란 얼음과 작은 얼음의 녹는 방식이 다르다.
커다란 어름만 사용 하면 투박해서 모양이 보기 싫고, 그렇다고 해서 작은 얼음이 많으면 금세 물이 많아진다.
그래서 크고 작은 얼음을 잘 배합한 뒤에 거기에 위스키를 따라야 한 다.
그러면 위스키가 잔 속에서 호박색의 조그만 소용돌이를 그리게 되는 것이 다.
다만,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런 식으로 몸에 익힌 조그만 철학은 나름대로 나중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 은 느낌이 든다.
백화점의 사계절 -백화점은 미묘한 계절감을 엿볼 수 있는 식물원과 비슷하다 여자들은 대개 백화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나도 백화점 을 끔직이 좋아한다.
그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는 동물원을 빼놓 고는 달리 찾아볼 수 가 없고, 더군다나 입장료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거리에는 놀랍게도 백화점이 다섯 군데나 있다.
물론 교 외 도시라서 도심의 백화점처럼 규모가 크거나 물건을 많이 갖추어 좋지는 않았 지만, 집에서 10분쯤 걸어간 곳에 백화점이 다섯 군데나 있다는 것은 꽤나 즐거 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만 있으면(대개 매일 시간이 있지만), 역 앞까지 걸 어가 백화점 안을 돌아다닌다.
배고하점을 돌아다니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대는 뭐니뭐니해도 평ㄷ이르이 오 전 중이다.
붐비지 않고, 공기도 깨끗하고, 모든 것이 손을 대지 않은 느낌으로 빽빽이 늘어서 있다.
개점 직후에 가면 종업원이 비교적 공손히 인사를 하기도 한다.
붐비지 않는 백화점은 왠지 모르게 식물원과 비슷하다.
어슬렁어슬렁 거리 면서 물건을 구영하다 보면, '아, 이제 슬슬 수국이 꽃봉오리를맺기 시작했겠구 나'라든가, '목련ㄲ도 다 떨어졌겠군' 하는 것과 같은 미묘한 계절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여름이 가까워 오면 매고하점 안의 장식에서도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되고, 여 름용 드레스나 수영복이나 서프보드(역주:파도 타기에 쓰이는 널빤지)나 어깨 끈 이 없는 브래지어(그런 것을 너무 오래 보면 곤란하지만)가 눈에 띄게 되고, '벌 써 여름이 왔구나!' 하고 실감을 하게 된다.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을 여름 들어 최초로 접하는 곳도 대개는 배고하점 안이다.가을의 낙엽 빛깔로 물든 백화점도 스웨터 냄새가 나서풍취가 있고, 크리스마스 전의 그 들뜬 분위기에 대해서는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화점 옥상이라는 데도 상당히 즐거운 곳이다.
맑게 개인 날에 벤치 에 앉아서 아이들과 함께 핫도그나 오징어 튀김을 먹거나, 제빙스 게임을 하며 놀거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며, 비가 내리는 날에 우산을 쓰고 옥상을 산책하 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최근에는 그럴 기회가 없어서 그다지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옛날에는 비가 내리면 여자와 둘이서 자주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곤 했었다.
옥외 테이블이나 목마 같은 것이 비에 젖어 있고, 주위의 풍경도 희미하 게 흐려져 있었다.
당연한 거지만, 사람들도 거의 없다.
애완 동물 매장의 열대 어가 언제나 변함 없이 수족관 안을 헤엄쳐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다.
백화점에는 아직도 발굴해야 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나는 느낀다.
회사 사무실이 왜 바쁘게 돌아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사무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은 굉장히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음 을 절실히 실감하게 된다.
세상이 우동 가게와 야채 가게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 모든 사람의 인생은 훨씬 단순해질 텐데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회사'라고 이름이 붙은 곳에서 근무한 일 이 없다.그렇다고 해서 특별히회사에 다니는 걸 거부하면서 살아왔다는 이야기 는 아니고, 그럭저럭 일이 올아가는 형편상 그렇게 되어 버린 것뿐이다.
나는 이 따금 생각하는데, 만일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하나하나를 컬러 마커 같은 것으로 색칠해 나간다고 하면, 내 경우에는 '형편상'을 칠하기 위한 색깔의 마커 가 상당히 만히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제쳐 두고 회사에서 근무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의 인식 영역에는 회사라든가 그것에 부수되는 갖가지 주변적 사물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가령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간다는 것은 어떠한 일인가? 상사와 부하라고 하는 것은 어떤한 정신적 위치관계에 있는가? 오피스 러브란 어떠한 것인가? 창 가족(역주:집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창가에 책상이 있는 중간 관리자로, 그들에 게는 일다운 일이주어지지 않는다)은 매일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은 모 두 내 상상력의 범위 밖에 있다.
회사가 바쁘다고 하는 것도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우동 집이 바쁘다"라든 가, "야채 가게가 바쁘다" 고 말한다면, 나도 체험해 본 바가 있으므로 이해할 수 가 있다.
그러나 "회사가 바쁘다"라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가 없다.
나의 고등 학교 시절으 친구가 광고 대리점 비슷한 것을 경영하고 있어서, 이 따금 그 사무실에 들르는데, 보면 스무 명 가량의 사원들이 모두 바쁜 듯이 일 을 하고 있다.
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도 있고, 표에 무엇인가를 써넣고 있는 사 람도 있고, 종이 봉지를 들고 밖으로 달려나가는 사람도 있다.
보고 있노라면 힘이 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떤 식으로 바쁜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 하기 때문에 동정심이라고 할 정도의 마음은 생기지를 않는다.
사무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은 굉장히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구 나,하고 절실히 실감하게 된다.
세상에 우동 가게와 야채 가게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모든 사람의 인생이 헐씬 더 단순해질 것이 틀림없다. "아주머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이쪽 분의 토마토를 싸드리고 나서 해 드릴게요"라든가, "미안합니다.
지금 가게가 조금붐벼서요.
배달은 30분 정도 걸 릴 겁니다"하고 말하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모두 통할 테니까 말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꽤 바쁜 것 같구나" 하고 말하면, 그 친구는 "당연하지.
보 고 있으면 알 수 있을거야"하고 대답한다.
하지만, 무엇이 어떤 식으로 바쁜가 하는 것까지 그 친구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런 걸 설명해 줄 여유가 없을 정 도로 바쁜 것이다.
뉴스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때 -특별히 내용 때문에 철렁하는 것이 아니라, 아나운서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말투에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맥시를 타고 멍하니 라디오 뉴스를 듣고 있다 보면, 이따금 정말로 가슴이 철 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
특별히 내용 때문에 철렁하는 것이 아니라, 아나운서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에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속 도로 1호선의 어느 인터체인지 부근 하행 차선에서 트럭의 '니쿠즈레(살이 까짐)'가 있어서 3킬로미터나 정체"라는 식으로 말하면, 한 순간 '어째서 트럭의 살이 까질까?'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 면, 분명히 이것은 '니 구즈레(짐이 무너져 내림)'다.
트럭이 껍질이 까지거나, 오 토바이가 무좁에 걸리거나 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어제 일본과 소련의 '지간큐(시간급)' 협의가 행해져서 "라는 뉴스도 있었 다.'어째서 일본과 소련이 시간당 급여에 대해서 협의를 하게 된 것일까?' 하고 싶이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자세히 설명을 들어 보니까 '지칸큐(차관급)'을 가리 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동음 이의어가 많아 잘못 알아듣는 일이 많다.
왠지 우스워서 택시 뒷좌석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었더니, " 손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죠?"하고 운전사가 물었다. "네? 아닙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이러한 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우스꽝 스러움이라는 것은 사람을 꽤나 즐겁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상당히 오래 된 일인데, 시보(시보)를 두 차례나 잘못한 아나운서가 있었다. "일곱 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실례햇습니다.
여럽 시입니다.
아니 실례했습니 다.
아홉 시입니다.
아홉 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는 식이어서, 나는 그 방송을 듣고 한참 동안 혼자 큰 소리로 웃은 적이 있다.
그 아나운서는 나중에 틀림없 이 상사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다. '일곱 시, 여덟 시, 아홉 시의 아무 개'라고 별명을 동료들이 붙여 주고, 그로부터 몇 년 동안은 놀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좀 불쌍하다.
불쌍하기는 하지만 우습다.
이른 유의 사건이 하루에 한 번 꼴로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상당히 인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말이다.
작지만 확고한 행복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가 쌓여 있다는 건 인생에 있어서 '작지만 확고한 행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생 각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바지를 미국식으로 '팬츠'라고 부르게 되었기 때문에, 이따금 그 안 에 받쳐 입는 종래의 팬츠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를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영어 라면 '언더 팬츠'가 되겠지만, 그러한 명칭이 뚜렷이 정착되어 있지 않은 일본에 서는 그 바깥 팬츠와 안 팬츠의 혼란 상황이 혼미의 도(도)를 더욱더 깊게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언더팬츠' 모으기를 (물론 남성용이지만) 꽤 좋아한다.
때때로 직접 배고하점에 가서 , '이것으로 할까, 저것으로 할까?' 하고 망설이면서 대여 섯 개를 한꺼번에 사기도 한다.
덕택에 옷장 서랍에는 상당히 많은 팬츠가 쌓여 있다.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가 쌓여 있다는 건 인생에 있어서 '작 지만 확고한 행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쩌면 나 혼자만의 특수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혼자 살고 있는 독신자를 빼놓고는, 자신의 팬츠를 자기 손으로 직접 고르는 남자는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그다지 찾아볼 수가 없 기 때문이다.
나는 속옷인 러닝 셔츠도 상당히 좋아한다.
산뜻한 면 냄새가 나는 흰 러닝 셔츠를 머리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그 기분도 역시 '작지만 확고한 행복' 중 하 나다.
하지만 이것은 팬츠의 경우와는 달리 언제나 같은 메이커의 같은 제품을 한꺼번에 사들이기 때문에 골라서 사는 즐거움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남성의 경우 속옷이라는 장르는 여기서 딱 끝나버린다.
여자의 속옷이 커버하고 있는 광대한 범위와 비교한다면, 마치 집 장사 주택의 앞들처 럼 좁고 간결하다.
팬츠와 러닝 셔츠 뿐이니까 말이다.
이따금 속옷에 대한 생각을 하면, 내가 남자로 태어나기를 잘했구나 하고 안 도하게 된다.
만일 내가 지금과 같은 성격인 채고 여자로 태어낫다면, 속옷을 수 납하기 위한 한구 개의 서랍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워크맨을 위한 진혼곡 -하나의 기계가 겨우 4년 만에 이렇게까지 진보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 니, '감개 무량'까지는 아니더라도 감탄할 만한 일임은 분명한 듯 싶다 4년 간 혹사를 당해 온 워크맨이 최근에 그 성능이 나빠졌기 때문에 신형을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한마디로 4년 간이라고 해도, 내 경우에는 매일 아침 조깅 을 할 때 서포터로 워크맨을 팔에다 묶고 달렸으니까,소모 정도가 보통 사람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한다면, '워크맨'이라기 보다 는 '런맨'이 되는 셈이긴 한데, 하여간 4년 동안 불평 없이 땀투성이가 되고, 비 를 맞고, 뒤흔들리고, 어떤 때는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탈없이 잘도 버텨 주었다고 생각한다.
기계를 전문적으로 받아 주는 절이라도 있으면 워크맨 공양이라도 올려 주고 싶을 정도다. '무라카미 주행 음악 동자'라는 법명이라도 붙여서 말이다.
오디오 가게에서 사온 두 번째 신형 워크맨은 첫 번째 워크맨에 비하면 훨씬 작고, 무게도 절반에 가깝고 게다가 오토리버스 기능까지 되고, 충전도 할 수 있 다.
가격도 지난번 워크맨보다 싸다.
하나의 기계가 겨우 4년 만에 이렇게까지 진보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니, '감개 무량'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감탄할 만한 일임은 분명한 듯싶다.
적어도 인간으 (가령 나의) 진보의 스피드와 비교하 면, 기계의 진보의 스피드는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에 감탄함과 동시에, '워크맨'이 과연 이렇게까지 진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야 물론 하나으 기계가 값싸고 작고 편리해 지는 것 자체에는 전혀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은퇴한워크맨을 들여다보고 있으 려니까, '진보 안하고 이대로였어요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문 득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이 세상의 진보의 95 퍼센트까지는 불필요한 것처럼 생각된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바람직 하지 않은 것 같긴 하다.
어쨌든 간에 소니 워크맨 WM 여, 평안히 잠들라.
긴자센에서의 원숭이의 저주 -나는 비교적 자구 그런 착각을 한다.
판단력에 결함이 있는 데다가, 상상력이 저 혼자서만 앞질러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모녀라고 믿어 버리면, 사실 여하와는 관계 없이 얼마 전에 지하철을 탔더니, 맞은편 좌석에 모녀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잇는 두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백화점의 쇼핑 백을 무릎에 얹고 앉아 있었는데, 얼굴이 꼭 쌍둥이처럼 닮았었다.
무료하던 차에 나는 '모녀간이라서 그런지 정말로 꼭 닮았구나.
틀림없이 저 아가씨도 나이를 먹으면 저런 아주머니가 될 거야' 하고 감탄하면서 힐끔힐끔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전철이 아카사카이쓰케 역에 정차하자, 나이 많은 쪽의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재빨리 내려 버렸다.
요컨대, 그 두 사람 은 모녀간이 아니라 그냥 우연히 옆에 앉았던 생판 모르는 타인들이었던 것이 다.
나는 비교적 자주 그런 착각을 한다.
판단력에 결함이 있는 데다가, 상상력이 저 혼자서만 앞질러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모녀라도 믿어 버리면, 사실 여하와는 관계없이 그 믿음이 혼자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도 그 두 사람이 '사실'은 진짜 모녀가 아니 었을까 하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그 두 사람은 자기네들이 진짜로는 모녀라는 사실을 모륵 있는 게 아닐 까 하고 말이다.
예를 들어 그 젊은 딸은 갓난애 때-가령 도쿄 올림픽이 있던 해에-숲 속에서 원숭이에게 납치되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딸기를 따 가지고 돌아왔을 때 갓난 애의 모습은 이미 거기에 없었고, 털실로 짠 조그만 모자와 원숭이의 털이 남겨 져 있을 뿐이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2년이 흘렀다.
딸은 여덟 살 때까지 원숭이의 손에서 자랐 는데, 그뒤로는 마을로 나와 촌장의 집에서 지내면서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 다.
오늘은 긴자의 마쓰야 백화점에 스테인리스 후추 용기를 사러 온 것이다.
하 지만 어머니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지하철에서 옆에 나란히 앉아도 그녀가 자기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 지 못한다.
원숭이의 저주는 아직도 그녀들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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