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무척 조용히 영업을 하고 있는 집이다. '토끼정'에는 두 종류의 요리밖에 없다. 하나는 매일 바뀌는 정식이 고, 또 하나는 고로케 정식이다. 두 음식에 바지락 된장국과 큰 드릇에 한가득 담긴 양배추 샐러드가 딸려 나오는데, 이게 참 무지하게 맛있다. 그리고 신선한 야채절임도 듬뿍 곁들여진다. 갓 볶은 참깨를 뿌린 데친 시금치라든가, 스파게티와 버섯 초무침 같은 게 작은 그릇에 소복이 담 겨 나온다. 쫄깃쫄깃한 스파게티와 씹는 맛이 상큼한 버섯 초무침은 여 느 정식집에서 나오는 반찬과는 격이 다르다. 그리고 밥은 보리밥이다. 이 보리밥이 투박한 느낌의 큼지막한 밥 공 기에 담겨 나오면 은은한 보리 냄새가 온 가게 안에 물씬 풍긴다. 나는 이 순간이 미치도록 좋다. 차 역시 은은한 엽차(여름에는 시원한 보리 차)가 나온다. 젓가락은 약간 짙은 색의 날씬한 삼나무 젓가락이고, 젓 가락을 싸는 종이는 고동색이 섞인 연둣빛의 무늬 없는 일본 종이다. 날마다 바뀌는 정식의 반찬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 만, 쓰자면 한이 없으니 여기에서 화제를 고로케 정식으로 한정하겠다. '토끼정'의 고로케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글로 표현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꽤 큰 고로케 두 개가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무수한 빵가루가 바깥을 향해 톡톡 튀듯이 알알이 서 있고, 기름이 쉭쉭 하는 소리를 내 며 안쪽으로 스며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건 거의 예술품이라 해도 좋 을 것이다. 그것을 삼나무 젓가락으로 꾹 누르듯이 잘라서 입에 넣으면, 튀김옷이 바삭 하는 소리를 낸다. 속에 든 감자와 쇠고기는 녹아들 것처럼 뜨겁 다. 감자와 쇠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대지 에 뺨을 비비고 싶을 정도로 잘 자란 감자-이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와, 주인이 엄선해서 구입한 쇠고기를 커다란 부엌칼로 잘게 썰 어 섞은 것이다. 양념은 재료의 뛰어남을 살리기 위해 아주 조금만 하 고, 맛이 좀 싱겁다 싶으면 '토끼정' 특제 소스를 친다. 소스는 커다란 항아리에 들어 있어서 스푼으로 그것을 퍼서 치는데, 뭐라고 형용해야 좋을지 모를 불가사의한 맛이 난다. 결코 뒷맛도 남지 않고 먹어도 먹어 도 물리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두 개의 고로케 중 하나는 소스 없이 먹 고, 다른 하나는 소스를 쳐서 먹는다. 소스를 쳐서 먹는 것도 맛있고, 소스를 치지 않고 먹는 것도 맛있다는 미묘한 심정에서다. '토끼정'의 주인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로 몸은 다부지다. 인상은 나쁘지 않으나 말이 없고, 고집이 세 보이긴 하 지만 친절을 강요할 것 같지는 않은 퍽 바람직한 성격의 인물이다. 목덜 미에 5센티미터쯤 되는 칼자국 같은 상처가 있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거 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나로서도 음식만 맛있으면 가게 주인의 경 력이야 어찌 됐든 알 바는 아니다. '토끼정'의 주인에게는 호리호리한 미인 부인과 중학생쯤 돼 보이는 딸이 있다. 나는 딱 두 번 집 부근의 길에서 그들을 보았다. 구태여 말 을 걸진 않았지만, 딸은 값비싸 보이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토끼정' 주인과 '토끼정' 부인과 '토끼정' 딸은 셋이서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늘 주인 혼자 '토끼정'에서 일을 하고 있다. 혼자서 재료를 사 서 요리를 만들고 차를 끓인다. 그의 움직임은 참 보기가 좋다. 일을 척 척 빠르게 처리하는데도 어수선한 느낌이 없다. 다른 사람한테서 들은 얘기에 의하면, '토끼정'의 주인은 원래는 야쿠 자였단다. 서른 일곱, 여덟이 되었을 때 그 바닥에서 손을 싹 씻고 식당 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옛날 패거리들과 연락이 닿지 않도 록 일부러 한적한 주택가를 골라 가게를 내고, 간판도 걸지 않고 선전도 하지 않고, 잡지사의 취재도 거절하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평판만 으로 조용히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인에게 확인해 본 건 아니니까 그 얘기의 진위는 알 수 없지 만,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얘기가 일맥 상통하는 듯하다. 그러나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맛있는 점심만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고, 그가 전 에 야쿠자였든 뭐였든 전혀 상관없다. 이런 맛있는 고로케 정식을 1,000 엔에 먹을 수 있는 가게는 도쿄의 어디에서도 절대로 찾을 수 없다. 언젠가 한번 내가 오후 한 시 반에 '토끼정'에 갔더니 재료가 다 떨어 지고 없었던 적이 있다. 내가 "그럼 다음에 오죠" 하고 가게를 나서려고 했더니, 주인이 나를 불러 세우며 "반찬은 남았는데 드시고 가시겠습니 까?"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먹으려고 만든 꼬치와 삶은 고비와 보리 밥과 된장국과 나물무침을 내왔는데, 이게 또 도저히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된장국은 냄비 속에 조개를 듬뿍 넣어 국물을 우려내고, 조개에 맛이 완전히 배어들 정도로만 끓이는 거다. 맛이라기 보다는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산뜻했다. "맛있군요" 하고 내가 말하자, 주인은 "남은 반찬이라..."하고 짤막하 게 대답했다. 이래서 나는 '토끼정'과 수수께끼 같은 '토끼정' 주인이 무척 마음에 든다. 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친다 지금은 새벽 한 시 반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바깥은 어둡다. 그것도 어정쩡하게 어두운 도시의 밤이 아니라, 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손가락이 검게 물들어 버릴 것만 같은 진짜 어둠이 깔린 밤이다. 우리 집 뒤쪽은 바로 산이랏 밤의 어둠 이 정말로 깊고 조용하다. 달이나 별이 총총한 밤에는 주변의 나무들이 어슴푸레하게 떠오르는데, 오늘 밤에는 그들도 어둠 속에 푹 묻혀 버리 고 말았다. 두 마리의 고양이도 완전히 잠들었다. 곤하게 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 고 있으면 나는 항상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고양이가 안심하고 잘 수 있는 동안은 특별히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 내가 어들 좀 갔기 때문에 집 안에서 나 혼자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서 이 원고를 쓰고 있다. 새벽 한 시 반에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원고를 쓰고 있다니, 참 오래 간만이다. 적어도 요 1년 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가 어째서 이런 시간에 깨어 있는가 하면, 너무 빨리 잠자리에 들어서 밤 열두 시 반(즉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 에 퍼뜩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역시 오후 일곱시 사십 분에 잠자리에 든 것은 너무 일렀다. 그러고 보니 왠지 시차 병에 걸린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일이 있어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다. 이렇게 한밤중에-고양이도 잠들어 버린 한밤중에-외톨이가 되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나름대로 분위 기가 있다. 부엌에 가서 보조레의 코르크 마개를 따고, 잔과 함께 가져 와 책상 위에 놓는다. 그리고 벌써 반년이나 듣지 못했던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 드를 턴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그 위에 올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요즘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그다지 듣지 않게 된 건 밤늦게까지 깨어 있 던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야 오후 두 시 반에 케이크를 먹으면 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다. 오래된 레코드라서 빠지직빠지직 잡음이 들어가 있다. 아니, 잡음이 들어가 있다기보다는 잡음투성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레코드를 대학생 때 샀으니까, 7~8년은 족히 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최초로 산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다. 지금도 나오고 있는지는 모 르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버브(폴리돌)의 <빌리 홀리데이의 혼> 이라는 편집 레코드로, A면은 1946년에 있었던 JATP의 라이브, B면은 스 튜디오에서 녹음한 앤솔러지(야마토 아키라 씨의 추천곡)로 이루어져 있 다. 내가 지금 듣고있는 것은 A면인데, 우선 <보디 앤드 소울>과 <스트레 인지 프루트>라는 압도적인 중량급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노래로 시작 하여, <트래블링 라이트>,<히즈 퍼니 댓 웨이>로 약간 밝아지고, 이어서 <더 맨 아이 러브>,<더 베이비 에인트 아이 굿 투 유>로 느릿느릿 나가 다가, <올 오브 미>로 거침없이 치닫고, 그 유명한 <빌리즈 블루스>로 단숨에 마무리되는 구성이다. <보디 앤드 소울>로 시작되는 구성이 약간 불만스럽지만(맨 첫 곳으로 듣기에는 너무 압도적이다), 이 레코드의 연 주에는 지긋이 귀를 기울이면 빌리 홀리데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굉장한 사람이었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된다. 빌리 홀리데이는 한때 지나치게 신격화되었던 적이 있어서, 나같은 사 람은 약간 짜증이 나 멀리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좋을 그런 주변적인 일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허심 탄회하게 음악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 보 면 역시 진지하게 노래를 듣게 만드는 멋진 가수임을 알 수 있다. 옛날 에도 멋지다고 생각했었지만 나이를 먹어 새삼스레 다시 들어보니 그 훌 륭함이 훨씬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그녀의 노래에는 몸 속 깊은 곳에서 자연히 배어 나오는 원액같은 것- 그것은 우리의 존재 이유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이 들어 있어서 그것이 청중들을 압도하고, 감싸 안고,도취시키고, 완전히 뻗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음악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갑자기 나 자신이 어디인지 잘 알 수 없는 곳에 파묻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때때로 이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결국, 노래는 그저 노래 일 뿐이다. 골똘히 생각하다 해서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만약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와 흔하디흔한 다른 재즈 가수의 노 래가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시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층성일 것이다. 요컨대 그녀의 노래에 포함된 어떤 요소는 듣 는 쪽이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 은 서랍 속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미개봉된 편지처 럼, 예정된 그날이 와야지 겉으로 드러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해 독할 수 있는 날이 되면 그냥 자연히 해독되는 것이다. 그런 음악이 있다는 것은 역시 멋진 일이다. 젊은 시절에 숨이 막힐 듯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어도 무엇 하나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던 부분이, 지금 이렇게 포도주 잔을 기울이면서 멍하니 듣고 있을 뿐인데 도 실타래가 풀리듯이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가 된다. 그러고 보니 나이 를 먹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버브 판 빌리 홀리데이도 좋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베스트 레 코드는 미국 컬럼비아에서 나온 <더 골든 이어즈 VOL.1>이라는 세 장짜 리 앨범이다. 이 석 장의 레코드는 진짜 많이 들었다. 그 정도로 듣고 또 들었던 재즈 보컬의 레코드는 또 없을 것이다. 버브나 컬럼비아나 데 카의 빌리 홀리데이가 각각 나름대로 훌륭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초일류 급 스윙 밴드를 배경으로 불러 젖히던 1930년대, 1940년대의 이 컬럼비 아 판 빌리 홀리데이는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산뜻하고, 그리고 완벽하다. 아슬아슬하고, 꼼짝도 할 수가 없고,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며, 그리고 참을 수 없이 슬프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방비 상 태며, 그러면서도 손을 대기가 어렵다. 특히 레스터 영이 함께 한 트랙은-<웬 유 아 스마일링 아이 캔트 겟 스타티드>-주옥같이 아름답다. 만약 앞으로 빌리 홀리데이를 들어 보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면 나는 역시 이 레코드부터 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 다. 그 유명한 <스트레인지 프루트>를 불렀을 무렵의 빌리 홀리데이는- 이상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가장 먼저 듣기에는 좀 너무 위태로운 것 같이 내게는 느껴진다. 그에 비하면 버브 판은 한밤중에 혼자서 듣기에 는 너무 슬프다. 이따금 밤에 재즈를 들을 수 있는 바에 가면 버브 시절의 빌리 홀리데 이 노래가 흘러 나올 때가 있다. 그녀의 그런 노래-가령 <올 오아 낫싱 앳 올>-를 들으면서 위스키를 마시다 보면, 왠지 나 혼자만이 중력이 다 른 해저나 그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척 깊은 곳이어 서 위로는 올라갈 수 없고, 제대로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겹다. 그래서 그저 위스키 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친다 -그녀의 노래에는 몸 속 깊은 곳에서 자연히 배어 나오는 원액 같은 것이 들 어 있어서, 청중들을 압도하고 감싸 안고 도취시키고 완전히 뻗어 나가게 한다 지금은 새벽 한 시 반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바깥은 어둠다. 그것도 어정쩡하게 어두운 도시의 밤이 아니 라, 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손가락이 검게 물들어 버릴 것 같은 진짜 어둠이 깔 린 밤이다. 우리집 뒤쪽은 바로 산이라서 밤의 어둠이 정말로 깊고 조용하다. 달 이나 별이 총총한 밤에는 주변의 나무들이 어슴푸레하게 떠오르는데, 오늘 밤에 는 그들도 어둠 속에 푹 묻혀 버리고 말았다. 두 마리의 고양이도 완전히 잠들었다. 곤하게 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 면 나는 항상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고양이가 안심하고 잘 수 있는 동안은 특 별히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내가 어딜 좀 갔기 때 문에 집 안에는 나 혼자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서 이 원고를 쓰고 있다. 새벽 한 시 반에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원고를 쓰고 있다니, 참 오래간만이다. 적어도 요 1년 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가 어째서 이런 시간에 깨어 있는가 하면, 너무 빨리 잠자리에 들어서 밤 열 두시 반(즉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에 퍼뜩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역시 오후 일곰쇼ㅣ 사심 분에 잠자리에 든 것은 너무 일렀다. 그러고 보니 왠지 시차 병에 걸린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일이 있어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다. 이런 한밤중에-고양이도 잠들어 버린 한밤중에- 외톨이가 되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다. 부엌에 가서 보조레의 코르크 마개를 따고, 잔과 함께 가져 와 책상 위에 놓 는다. 그리고 벌써 반년이나 듣지 못했던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그 위에 올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요즘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그다지 듣지 않게 된 건 밤늦게까지 깨어있던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야 오후 두 시 반에 케이크르르 먹으면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다. 오래된 레코드라서 빠지직빠지직 잡음이 들어가 있다. 아니, 잡음이 들어가 있 다기보다는 잡음투성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레코드를 대학생 때 샀으니까, 7-8년은 족히 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최초로 산 빌리 홀리 데이의 레코드다. 지금도 나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버브(폴리돌)의 《빌리 홀리데이의 혼》이라는 편집 레코드로, A면은 1946년에 ㅎㅇ던 JATP의 라이브, B면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앤솔러지(야마토 아키라 씨 의 추천곡)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은 A면인데, 우선<보디 앤드 소울>과 <스트레인지 프루트>라는 압도적인 중량금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노래로 시작하여, <트래 블링 라이트>·<히즈 퍼니 댓 웨이>로 약간 밝아지고, 이어서 <더 맨 아이 러 브>·<더 베이비 에인트 아이 굿 투 유>로 느릿느릿 나가다가, <올 오브 미> 로 거침없이 치닫고, 그 유명한 <빌리즈 블루스>로 단숨에 마무리 되는 구성이 다. <보디 앤드 소울>로 시작되는 구성이 약간 불만스럽지만(맨 첫 곡으로 듣기 에는 너무 압도적이다), 이 레코드의 연주에 지긋이 귀를 기울이면 빌리 홀리데 이라는 사람이 정말 굉장한 사람이었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된다. 빌리 홀리데이는 한때 지나치게 신격화되ㅇ던 적이 있어서, 나같은 사람은 약 간 짜증이 나 멀리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좋을 그런 주변적인 일들이 완전히 벗어나 허심 탄회하게 음악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 보면 역시 진지하게 노래를 듣게 만드는 멋진 가수임을 알 수 있다. 옛날에도 멋지다고 생각했었지만 나이 를 먹어 새삼스레 다시 들어 보니 그 훌륭함이 훨씬 분명하게 이해되ㅇ다. 그녀의 노래에는 몸 속 깊은 곳에서 자연히 배어 나오는 원액 같은 것-그것은 우리의 존재 이유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이 들어 있어서 그것이 청중들 을 압도하고, 감싸 안고, 도취시키고, 완전히 뻗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음악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갑자기 나 자신이 어디인지 잘 알 수 없는 곳에 파묻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때때로 이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생 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결국, 노래는 그저 노래일 뿐이다. 골똘히 생각한다 해서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만약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와 흔하디 흔한 다른 재즈 가수위 노래가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시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중층 성(重層性)일 것이다. 요컨데 그녀의 노래에 포함된 어떤 요소는 듣는 쪽이 아무 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람 속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미개봉된 편지처럼, 예저오딘 그날이 와야 지 겉으로 드러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해독할 수 있는 날이 되면 그냥 자 연히 해독되는 것이다. 그런 음악이 있다는 것은 역시 멋진 일이다. 젊은 시절에 숨이 막힐 듯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드렁도 무엇 하나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던 부분이, 지금 이 렇게 포도주 잔을 기울이면서 멍하니 듣고 있을 뿐인데도 실타래가 풀리듯이 세 세한 부분까지 이해가 된다.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버브 판 빌리 홀리데이도 좋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베스트 레코드는 미국 컬럼비아에서 나온 《더 골든 이어즈 VOL.1》이라는 세 장짜리 앨범이다. 이 석 장의 레코드는 진자 많이 들ㅇ다. 그 정도로 듣고 또 들ㅇ던 재즈 보컬의 레코드는 또 없을 것이다. 버브나 컬럼비아나 데카의 빌리 홀리데이가 각각 나 름대로 훌륭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초일류급 스윙밴드를 배경으로 불러 젖히던 1930년데, 1940년대의 이 컬럼비아 판 빌리 홀리데이는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산뜻하고, 그리고 완벽하다. 아슬아슬하고, 꼼짝도 할 수가 없고, 춤을 추 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며, 그리고 참을 수 없이 슬프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 방비 상태며, 그러면서도 손을 대디가 어렵다. 특히 레스터 영어 함께 한 트랙은-《웬 유 아 스마일링 아이캔트 겟 스타티드 》-주옥같이 아름답다. 만약 앞으로 빌리 홀리데이를 들어 보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면 나는 역시 이 레코드부터 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유명한 <스트레 인지 프루트>를 불렀을 무렵의 빌리 홀리데이는-이상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먼저 듣기에는 좀 너무 위태로운 것같이 내개는 느껴진다. 그에 비하면 버브 판은 한밤중에 혼자서 듣기에는 너무 슬프다. 이따금 밤에 재즈를 들을 수 있는 바에 가면 버브 시절의 빌리 홀리데이 노래 가 흘러 나올 때가 있다. 그녀의 그런 노래-가령 <올 오아 낫싱 앳 올>-를 들 으면서 위스키를 마시다 보면, 왠지 나 혼자만이 중력이 다른 해저나 그 어딘가 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척 ㄱ은 곳이어서 위로는 올라갈 수 없고, 제 대로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겹다. 그래서 그저 위스키 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찰스턴의 유령 -기왕 나올 바에는 유령도 고풍 찬연하고 고요하며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완 고하게 옛모습을 간직한 곳에 나타나고 싶을 텐데... ... 찰스턴에서 유령이 나오지 않는 오래된 집을 발견하기란 지극히 힘든 일이다, 라고 어떤 책에 씌어져 있었다. 뭐 다소 문장상의 과장은 있었다 해도, 확실히 해질 모렵에 찰스턴의 고요한 코블스톤 거리를 걷다 보면 정교하게 세공된 검은 철문 너머로, 혹은 어렴풋한 등불이 뿌옇게 비치는 현관 한 구석에서 뭔가 이상 한 그림자를 본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한밤의 정원은 어쩐지 울적하고, 거대한 떡갈나무 가지에 몰(역주: 인도 모골 지방이 원산지인 돋을무늬의 모직물)처럼 축 늘어진 착생 식물이 강바람에 흔들거리며, 땅거미 속에 백일홍이 아련하게 떠 있다. 찰스턴이란 곳은 그런 도시다. 모든 것이 오래되고 고요하며, 그리고 우아하다. 기왕 나올 바에는 유령도 뉴욕 시티보다는 이런 도시에 출몰하는 쪽 이 훨씬 기분이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찰스턴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데, 고풍 찬연한 남부의 옛모습을 좀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완고하게 간직한 항구 도시다. 애슐리 강과 쿠퍼강이 합류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 하구에 꼭 맨해튼 섬과 비슷한 모양으로 위 치하고 있는 천연의 항구로, 식민지 시대에는 '작은 런던'이라 불리며 번창했었 고, 군사적 중요성에서 남북전쟁의 발화점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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