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9편 (9/2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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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9편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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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중국 제품을 보이콧하자"는 내용의 투서가 실려 있 었다.
북경에서 대규모의 개 사냥이 행해져 6주일 동안 약 20만 마리의 개가 처분된 사건이 있었는데(굉장하죠!), 그것은 거기에 대한 한 호놀 룰루 시민의 반응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조선과 영국간의 개 소동은 100년쯤 전에도 한 번 있었다.
그때 빅토리아 여왕(그랬다고 생각한다)이 조선 황제에게 우호 의 선물로 개를 보냈는데, 조선 궁중 측에서는 완전히 잘못 받아들여 고 맙게 개를 요리해서 먹었던 것이다.
그 소동은 당시에 상당한 정치적 문 제가 되었다.
재미있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재미있네요.
이렇게 개를 먹고 안 먹는 관습의 문제를 편식과 같은 선상에서 논하 는 데는 좀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엇을 먹고 무엇을 안 먹는다는 선택이 근본적으로 불합리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차원이다.
야만은 인간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의 문제다.
내가 굴은 먹을 수 있고 대합은 못 먹는 것에 대해 "왜 그런데?" 하고 캐물어도 나로서는 무척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성향을 설명하는 건 가능하지만 개념을 설명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얘기가 심하게 비약되지만, "왜 그런 마누라와 같이 살게 됐는데?"라 는 질문도 같은 선상에 있는 어려운 문제다.
나는 이런 종류의 현실을 잠정적으로 '동시 존재적 정당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왠지 이번에는 얘 기가 복잡해졌다.
돌 쌓기 고문과 드릴 고문 영화에는 고문 장면이 곧잘 나온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 의 시대극에는 종종 돌 쌓기 고문이 등장했었다.
누가 생각해 냈는지 모 르겠지만, 그건 꽤 그럴듯한 고문이다.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잠깐 설명을 하자면, 우선 주판처럼 울퉁불 퉁 튀어나온 판 위에 죄인을 꿇어앉히고 그 무릎 위에 평평한 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는 것이다. <쇼텐>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무릎 밑에 방석을 포개 가는 것이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 반대인 셈이다.
올려 놓은 돌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무릎이 으드득거리고, 결국은 바스러지고 만다.
내가 실제로 당 해 본 일은 아니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굉장히 아플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돌 쌓기 고문을 당하고 있다면, 불쌍한 반면 퍽 섹시하기도 하다.
옆에 탐관오리가 떡 버티고 서서(역시 사토 게이가 그 역으로 적격이겠지) "이봐, 낭자, 아프지? 아버지가 있는 곳을 어서 대"라고 호통을 치고 있고, 꽤 그럴싸 하다.
일본의 고문 중에는 돌 쌓기 외에도 목마 고문, 주리 틀기 같은 것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다른 범주 안에 속해 있으므로 이번에는 생략하겠 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신 분은 닛카츠 영화의 <단키로쿠> 시리즈를 보면 된다.
영화의 고문 장면에서 탐관오리와 나란히 일반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 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나치스 친위대의 장교다.
이 사람이 나오지 않으 면 고문 장면이 좀처럼 마무리되지 않는다.
요즘 나치스물로 잘 만들어 진 영화는 역시 <마라톤 맨>이라고 생각한다. <마라톤 맨>은 나치스의 잔당이 유태인 청년을 잡아 고문하는 얘기다.
이 나치스 아저씨는 원래 치과 의사로, 청년의 충치를 드릴로 들쑤셔 치 아의 신경을 노출시키고 나서는 그것을 다시 끈질기게 쑤시는 것이다.
평소에도 치과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게 무서웠는데, 이런 걸 보고 나니 미칠 것만 같다.
돌 쌓기도 끔찍하지만 드릴은 더 끔찍하다.
지금은 잊혀져 가는 베트남 전쟁이지만 얼마 전에 영화를 보는데, "베트남에 얼마나 있었어?" 하는 질문에 어 떤 파일럿이 "2년 반"이라고 답하는 대목이 나왔다.
자막은 "두 번 왕복 하고 반"으로 처리되었다.
직업상 나도 다른 사람의 번역에 대해서 왈가 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건 역시 '2년 반'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지 않 나 싶다.
내 기억으로는 마이클 파가 쓴 <파병>이라는 베트남 전쟁 리포트에 이 '턴(turn)'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확실히 원 턴이 1년이었다.
베트남에 서 1년을 근무했다면 이미 베테랑 군인으로, 보통 사람이라면 정신이 이 상해지고 만다.
그런 것을 2년 반이나 근무했으니 이 파일럿은 상당히 거친 사내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두 번 왕복하고 반'이라면 도무지 뭐 가 뭔지 전혀 이해가 안 간다.
미국 본토와 베트남을 두 번 왕복하고 반 이라면, 지금쯤은 베트남 한복판에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영화나 소설이나 다큐멘터리가 꽤 많은데, 그런 것들을 보다가 새삼스레 깨닫는 것은 은어와 속어가 참으로 많다는 사실 이다.
나도 처음으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소설을 읽었을 때는 뜻도 모를 단어투성이라 뭐가 뭔지 도통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하기야 이것은 나뿐 만 아니라 평범한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에 따라서는 책 뒤에 베트남 전쟁에서 쓰였던 전문 용어와 속어에 대한 '빠른 이해를 위 한 사전' 같은 편리한 것이 붙어 있는 것도 있다.
나는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 좋아서 극장에 가서 네 번 정 도 봤는데, 그 영화에 나오는 속어도 소설만큼은 아니더라도 역시 상당 하다.
특히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인 말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자막으로 처리할 수도 없다.
말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추잡한 전쟁이었던 것 같다.
제 3 장 문학은 무거워도 사는 건 가볍게 이발소에서 어깨 결림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몰랐었지만, 다른 사람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도코야(이발소의 옛 호칭)'라는 말은 방송 금지 용어인 모양이다.
라디오라든가 텔레비전 에서는 '리하쓰텐(이발소)'이라고 해야만 하는 것 같다.
단, '도코야상 (이발소 아저씨)'은 X와 Z의 중간인 Y로, 그 정도라면 뭐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고 한다.
이왕 내친김이니까 더 얘기하자면, '야오야(채소 가 게)'는 X고, '야오야상(채소 가게 아저씨)'는 Y란다.
허 참, 세상이란 한없이 복잡하다.
도코야라는 말이 대체 어디가 어때서 차별적인 용어라 고 하는 걸까? 가령 '재능 없는 작가'라는 비평은 차별적인 용어가 아닐 까? '재능에 부자연스러운 작가'라든가 '재능에 핸디캡이 있는 작가'라 든가 좀더 완곡하게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어째서 '도코야'는 안 되고 '재능이 없다'는 허용되는 걸까? '오카마(역주:남색을 가리키는 비어)' 는 어째서 차별 용어가 아닌지, 이런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면 한이 없기 때문에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도코야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사실 나는 옛날부터 이발소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이 고역이었다. <하 이 패션>의 독자 중에는 필시 이발소에 가본 적이 없는 분들이 무수히 많을 거라 생각되어 일단 설명을 해두자면, 이발소의 마사지 과정은 머 리를 감은 뒤에 행해진다.
머리가 마르기까지 머리와 관계된 일 이외의 일이 '막간을 이용해서'라는 식으로 삽입되는 것이다.
어깨나 목이나 팔을 중심으로 1~2분 간 꼭꼭 주물러 주는데, 그것이 나한테는 참으로 고역이다.
어째서 고역이냐면, 어깨가 전혀 결리지 않 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어깨 결림이라는 걸 한 번도 의식하지도, 경험한 적도 없다(잘난 체를 하자면 숙취, 두통, 변비를 경험한 적도 없다.
불 면증을 경험한 적도 거의 없다.
자기 혐오증은 1년에 약 두 번 정도).
그러니까 미안한 얘기긴 하지만, 모처럼 이발소에서 마사지를 받아도 그 저 간지러울 뿐이다.
모두들 어깨 결림은 고통스러운 거라고 말하지만, 결리지 않는 어깨를 누군가가 쓸데없이 주물러 줘도 나름대로 꽤 괴롭 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프로페셔널하게 열심히 주물러 주는데 트집을 잡듯 이 "간지러우니까 마사지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는 좀처럼 말할 수 가 없다.
그러니까 몇십 년 동안이나 이건 일종의 인간 수양이라고 생각 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내내 참아 왔다.
나는 이발소에 간다는 별것도 아 닌 한 가지 일을 통해서도 인생을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 었다.
하긴 요즘에는 반갑게도 이 마사지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어쩌면 나이를 먹음에 따라 내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안 되어도 조금은 어깨 결림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사지를 받고 '아아, 참 기분 좋구나'라고까지는 생각을 안 해도, 옛날에 비해 훨씬 덜 간지럽다고 느낀다.
덕분에 이발소에 가는 것이 옛날보다 훨씬 덜 고 통스럽다.
사람이란 이렇게 사소한 일들을 쌓아 가면서 나이를 먹어 가 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발소 아저씨한테 "무라카미 씨는 어깨가 결리지 않으 신가 봐요.
이 정도로 근육이 부드러운 사람은 많지 않죠"라는 얘기를 듣는다.
어째서일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님도 어깨가 결리는 체질 이고, 아내도 그렇다.
나만 전혀 결리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의 어깨를 주물러 보았는데, 어깨가 가장 심하게 결리는 사람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바둑을 두시는 분들이죠.
그렇게 어깨가 결 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딱딱한 것이 아예 돌덩이 같아요"라고 이발소 아저씨는 말한다.
내가 다니는 이발소 바로 근처에 기원이 있어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자주 오는 것이다.
분명히 머리를 쓰는 탓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딱한 일이다.
하지만 '아니, 아니, 잠깐.
그러고 보면 나도 일단 소설가고 이래저래 머리를 쓰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머리를 쓰 고 있지 않은 건가? 그냥 머리를 쓰고 있다는 기분만 들 뿐인가? 소설을 쓰는 것은 바둑을 두는 것보다는 머리를 덜 쓰는 작업인가? 이발소 아저 씨에게 나 이외의 다른 소설가가 머리를 깍으러 온다면 그런 비교도 가 능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소설가 손님은 나밖에 없는 듯해서 비교할 방 법이 없다.
어쩌면 이발소 아저씨가 "이런 저런 사람들의 어깨를 주물러 봤지만, 소설가처럼 어깨가 결리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라는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할지도 모른다.
나는 솔직히 다른 사람의 어깨를 주무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썼듯이 부모님도 아내도 어깨가 결리는 체질이므로 옛날부터 자주 어깨를 주물러 봤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니까 어쩔 수 없다.
나 자 신이 어깨가 결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깨 결림이 어떤 것이고, 어떻 게 하면 그것을 풀 수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
모르는 일을 하자니 당연 히 재미도 없다.
그래도 부모님의 경우에는 내가 어깨를 10분쯤 주무르면 용돈을 주시 기도 했으니까 어렸을 때는 돈이 탐나서 참고 주물렀지만, 아내는 물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음음, 거기가 아파요.
왜 그렇게 못해요?"라든가 "좀더 힘을 줘서 주물러요" 하고 혼을 내기 일쑤다.
내가 불평을 하면 "당신은 어깨가 결리는 고통 도 모르고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 정도 봉사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라고 반론을 편다. "그럼, 좋아요.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구요" 하는 얘기를 들으면, 그런 억지를 부릴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만 포기하고 열심히 어깨를 주무르게 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어깨를 주무르는 게 특기인 남자가 있다.
어깨가 결린다는 사람이 있으면(상대방은 여자인 경우가 많다.
어째서일까?) 그 럼 잠깐 주물러 주지, 하고는 몸을 만지고 결리는 부분을 찾아서 시원하 게 잘 풀어 준다.
나 같은 사람과는 달리 손 놀림이 간결하고 요령이 좋 으며 보기에도 효과적이다.
이 사람은 인기가 높아져서 마침내 마사지의 프로가 되었는데, 나도 그 기분을 전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내가 다른 사람의 어깨를 꾹 한 번 누르면 안개가 걷히듯이 그 사람의 어깨 결림이 가셔, "아아, 편안해졌어.
거짓말 같다.
정말 고마워" 하는 인사를 듣거나 한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분야가 어떻든,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순수한 기쁨을 준다는 것 은 즐거운 일이다.
나도 내가 쓴 책을 읽고 "아아, 재미있었어" 하고 기 뻐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소설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격려도 되고, 더욱 재미있는 걸 써야지 하고 다짐도 하게 된다.
딱히 칭 찬을 받으려고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내가 뻔뻔스럽다고 해도 기가 꺾여 도중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일이 계속 이어지면 그대로 프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재능의 경향이 라 불러도 괜찮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경향이 생기면, 그것이 자동적으로 점점 짙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결과적으로 프로 가 된다.
그런 경향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런 경 향은 원래부터 사람에게 입력되어 있나 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몸을 슬쩍슬쩍 만지기만 해도, 여기가 이런 식으로 뭉쳐 있으니까 여기 를 이렇게 누르면 되는 거라고 알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전연 몰라서(요 는 그런 재능이 입력되어 있지 않아서) 멀쩡한 관절을 함부로 꾹꾹 누르 다가 아내의 비난을 사기도 한다.
세상은 이렇게 무척이나 불공평한 것 이다.
나는 어째서 마사지의 프로가 되지 못하고(혹은 될 수 없고), 이렇게 프로 작가가 되어 있는 것일까, 하고 가끔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고, 적합하고 적합하지 않다는 근소한 차이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다르게 지압사가 되고, 바둑 기사가 되고, 작 가가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참으로 순수하고,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이런 걸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이에 이윽고 이발이 끝났다.
이발소 에서 나는 온갖 일들을 생각한다.
하얀 아가씨와 까만 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에 별안간 깨달은 건데, 요즘에는 하얀 아가씨와 까만 아가씨 가 나오는 화장품 만화 광고를 전혀 볼 수 없다.
미시족풍의 30대와 20 대의 아가씨가 번갈아 까맣게 되기도 하고 하얗게 되기도 하면서 "어머, 어떻게 된 거야.
하얀 아가씨, 요즘 아주 뽀얗게 됐네?", "사실은요, ...를 썼거든요"라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광고 말이다.
시종일관 똑같은 패턴의 광고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광고를 무척 좋아해 만약에 진짜로 없어진 거라면 섭섭할 것 같다.
등장 인물들이 차례로 하얗게 됐다가 까맣게 됐다가 하는 것이 재 미있었다.
그렇게 부단히 입장을 바꾸다 보면 때때로 착각해서 양쪽 모 두 깨매지거나 양쪽 모두 하얘지거나 하는 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유심 히 살펴보았지만, 단 한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어느 한 쪽이 희면, 다 른 한 쪽은 까맸다.
어느 한 쪽이 검으면, 다른 한 쪽은 하ㅇ다.
그 광고가 없어졌다면 언제쯤 없어졌을까?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봤지 만 아무도 몰랐다.
어느 사이엔가 '그러고 보니' 하는 식으로 없어졌나 보다. "글쎄요, 그러고 보니 요즘 잘 안 보이네요"라는 식으로 말이다.
요즘에는 백색 미인도 별로 인기가 없는 듯하니까 광고를 하는 쪽도 틀림없이 심드렁해졌을 것이다.
하얀 아가씨는 O이고, 까만 아가씨는 X 라는 단순한 양극 구조적인 도식이 통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 면 광고 기반 자체가 소멸되고 만다.
까만 아가씨와 하얀 아가씨가 "이 거 산모리츠에서 스키 타면서 태운 거야", "어머, 부럽다.
얼마 동안이 나 가 있었는데?" 하는 얘기를 하게 된다면, 더 이상 광고로서는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갈색 미인'이라는 캐릭터까지 나온다면 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점점 더 알 수 없 게 된다.
옛날에는 단순해서 좋았는데 말이다.
하긴 하얀 아가씨,까만 아가씨 하면 어쩐지 요즘에는 스트립 쇼를 하 는 술집의 간판 같은 느낌도 있다. '흑백 절정 대결.
졸라매는 까만 아 가씨,몸부림치는 하얀 아가씨'라는 식으로 말이다.
가능하면 이런 대결 은 다이애나 로스와 올리비아 허시의 콤비로 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무 리일 것이다.
광고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이 하얀 아가씨와 까만 아가씨 시리즈도 좋았지만, 옛날의 양명주 광고도 좋았다.
이 광고는 대략 여덟 컷 정도 의 만화로, 주인공은 이름이 이치로인가 하는, 이름부터도 확실히 순수 그 자체인 초등 학생이다.
이치로 군의 어머니는 몸이 약해서 늘 자리에 누워 있다.
그래서 이치로 군은 학교엘 가도 왠지 생기 발랄하지 않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동급생인 스스무 군(이름부터가 친절할 것만 같다)이 "우리 엄마도 몸이 약했는데 양명주를 드시더니 요즘에는 완전 히 건강해지셨어"라고 이치로 군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치로 군은 집으로 돌아가 그 얘기를 어머니에게 전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럼, 나도 시험삼아 한번 양명주를 마셔 볼까"라며 관심을 갖는다.
마시면 당 연히 기운이 난다(하여튼 광고니까 기운이 나지 않을 리가 없다).
마지 막 장면은 이치로 군의 가족이 오쿠타마 부근에서 등산을 하는 장면으 로, 이치로 군의 어머니는 몰라볼 정도로 건강해졌다.
얼굴도 젊어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도 흐뭇해 하는 것 같다.
다 양명주 덕분이 다.
잘 됐다.
이 광고의 맥락은 '하얀 아가씨,까만 아가씨'의 경우와 거의 비슷하 다.
즉 어떤 특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구제된 인간 A가, 지식을 가 지고 있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있는 인간 B에게 지식을 나눠 주고 자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A가 B에게 구해 줬다고 생색을 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무상의 호의며 구제인 것이 다.
A는 어디까지나 B가 있어야 할 상황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리고 A는 B가 자신처럼 좋아진 것을 순수하게 잘됐다고 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 광고가 역시 훌륭한 광고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하얀 아가씨도 사람이니까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까만 아가씨를 '흥, 참내, 뭘 모른다니까' 하며 깔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하얀 아가씨는 심술 같은 건 부리지 않고 까만 아가씨에게 효과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 까 만 아가씨는 구제받게 되고 하얀 아가씨는 자신이 한 순간 안 좋은 생각 을 했던 것을 남몰래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그런 건 사실적이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사실적이 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것이야말로 지난날 전후 민 주주의의 이상 세계다.
요컨대 거기에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상태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노력만 하면 인간은 거기에 분명히 도달할 수 있 는 것이다.
물론 그런 세계라 해도 인간이 모두 평등하지는 않다.
하얀 아가씨는 까만 아가씨보다, 스스무 군은 이치로 군보다 한 발 앞서 있는지도 모른 다.
모두가 평등한 세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하얀 아가씨도 스스무 군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쳐진 사람 에게 손을 빌려 주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옛날이 좋았고 지금은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확실히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만한 곳에는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그때 도 없었던 곳에는 없었다.
그래도 있는 곳에는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얀 아가씨는 늘 까만 아가씨를 구제했고, 스스무 군은 늘 이치로 군을 구제했으며, 그것이 제법 오랫동안 한 패턴의 시리즈 광고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분명히 정신적인 여유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혹은 '놀이'라고 할까, 정신의 예비 공간 같은 것이 거기에는 있었던 것이다.
유토피아는 존재한다고 하는 생각이 공통 환상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존 재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세계에서는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사람들은 다들 건강했고, 여자들은 모두들 얼굴이 하ㅇ고, 오쿠타마는 날씨가 좋 았다.
물론 이제는 그런 환상은 사라져 버렸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그것을 깨끗이 날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환상 자체가 상품화되고 말았다.
바야 흐로 환상은 자본 투자의 새로운 개척지인 것이다.
더 이상 환상은 아무 대가 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배급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 은 다양화되고 세련화되어 아름답게 포장된 상품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 한 세계에서의 하얀 아가씨는 더 이상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스스무 군은 쓸데없는 일에 나서서는 안 된다 고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하얀 아가씨와 까만 아가씨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것이 이 글의 테 마다.
아마 어디로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 제목 만들기의 어제와 오늘 요즘 영화 제목은 이렇다 할 만하게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히트한 영화를 보면 <스타 워즈>라든가 <E.T>라든가 <레이더스> 같은 오리지널 제목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왠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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