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그 럼 종류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점'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 자질구레한 정보를 세밀히 체크해 보면 도쿄와 간사이 지방 사람들 의 다양한 사건에 대한 의견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퍽 재미있다. 예를 들어 간사이 지방에 있는 한 텔레비전 방송국의 프로그램 시간표 를 보니 <혹성 탈출> 시리즈를 다섯 편, <쇼와 잔협전>을 세 편이나 한 꺼번에 연속해서 방영한다고 되어 있었다. 아무리 설날이라고 해도 도쿄 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절대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다음날이 설날 아침이니까 한밤중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이야, 저 원숭이 가면을 어 떻게 만들었을까?", "정말" 하면서 <혹성 탈출> 다섯 편을 연속적으로 보며, 술을 마시거나 설날 음식을 먹는 간사이 지방 사람들의 모습을 상 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찔어찔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나카지마 같 은 사람의 칼럼을 읽을 수 있어 즐겁다. <플레이 가이드 저널>말고는 <광고 비평>이라는 잡지의 텔레비전 CF 소개 기사를 뽑아서 읽는다. 어째서 그런 걸 읽느냐 하면, 나는 텔레비 전에도 CF에도 전혀 흥미가 없고, 대부분의 CF는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 적 없는 CF를 카피와 스틸 사진만으로 감상하는 것 은 매우 기괴하고 쓸데없는 일이다. 마침 여기 '맛김'의 광고 필름을 소개하는 게 있으니 잠깐 발췌해 보 겠다.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이토 시로와 부하인 미네 노보루. 이토:야마시타 군, 자네는 며칠 전에 아직 맛김을 먹어 보지 못했다 고, 분명히 그렇게 얘기했지? 부하:아, 네. 견문이 부족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하 생략) 이런 식인데, 카피만 읽으면 이게 어떻게 연간 제2위의 CF가 되었는 지, 그 재미의 질을 잘 파악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실제로 본 사람들은 재미있다고들 하니까 뭐... 심각하게 '맛김' CF의 영상을 상상해 보는 요즈음이다. 누군가 <텔레비전 CF 걸작편>이라는 비디오 같은 걸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의외로 잘 팔리지 않을까? <메이킹 오브 맛김> 같은 것을 말이 다. 가가 야마히로는 그 후에도 잡지사 몇 군데를 망하게 했다. 어정쩡한 내 고향 나는 교토에서 태어났지만 바로 효고 현 니시노미야 시 슈쿠가와란 곳 으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같은 효고 현의 아시야 시로 옮겼다. 그러니 까 내가 어디 출신인가는 명확하지 않지만 10대를 아시야에서 보내고, 부모님의 집도 그 곳에 있으니까 일단은 아시야 출신이라고 한다. 사실 대로 말하자면 좀더 막연하게 '한신칸 출신'이라고 해야 내 마음도 편하 겠지만, 이 '한신칸'이라는 말의 뉘앙스는 간사이 지방 사람이 아닌 다 음에야 이해하기 힘들다. 하긴 아시야라고 해도 내가 자란 곳은 지금 한창 화젯거리가 되고 있 는 공주병 붐이 일어난 아시야가 아니라,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인 아시야니까 아무래도 솔직히 "아시야 출신입니다"하고 말하기가 좀 그렇다. 괜히 쑥스럽다. 우리 집 주위는 납치당할 것 같은 순간에 큰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우르르까지는 아니더라도 네댓 명 정도는 좋이 튀어나올 듯한, 극히 평범한 주택가다. 예전에 덴엔초후 시 출신의 남자와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도 "그 렇다니까. 정말 그래"라며 동감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만 해도 말이지, 덴엔초후에서도 가난한 쪽에 속하는데, 태어 나고 자란 곳이 덴엔초후라고만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굉장하다고 놀 란다니까. 정말 답답해서 원." 그런 얘기였는데 진짜 답답할 것 같다. 나만 해도 10대 시절을 아시야 에서 보내면서 '공주님' 같은 여자 아이와는 단 한 번도 말을 해본 기억 이 없다. 아시야에 대해 지금도 가장 잘 기억나는 것이라면, 한밤중에 종종 집을 빠져 나가 해안가(지금은 이미 없어지고 말았지만)에 가서 모 닥불을 피워 놓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정도인데, 그런 건 딱히 아시야 가 아니더라도 바다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줄곧 "고향이 어디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고베 쪽 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고베요, 좋은 곳이죠"라는 소리를 듣는 일이 많아 이것도 또 찜찜하여, 요즘에는 "효고현 남부입니다"라고 대답 한다. '효고 현 남부'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일기 예보처럼 시원시원해 서 퍽 마음에 든다. 그러나 출신지를 밝히는 일 하나로 심각하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해야 한다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은 친구들이 많이 있는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므로 돌아가 서 살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지만, 도쿄의 대학을 나와 도쿄의 회 사에 다니는 코스를 밟아 결혼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던 한신칸 출신의 친구들이 요즘 들어 탁탁 신변을 정리하고 간사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득 둘러보니 나와 고등 학교 동창이면서, 지금도 도쿄에 있어서 연락 이 닿는 친구는 딱 한 명 밖에 없다. 그들이 귀향하는 이유를 대충 요약하자면, 아이들도 제법 컸고, 도쿄 보다도 한신칸 쪽이 훨씬 주거 환경도 좋으니까 이제는 슬슬 속속들이 잘 아는 곳에서 느긋하게 지내고 싶다고 하는 정도가 된다. 대개의 회사 는 간사이에 지사(혹은 본사)가 있어서 도쿄를 떠난다 해도 별달리 생활 에 곤란을 겪는 일은 없다. 때때로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어서 한신칸 출신들은 도쿄에 와서도 맹렬하고 활달하게 활동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 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개중에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이것은 나의 친구들과 내가 아는 사람 들에게 한정된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모두들 비교적 느긋하게 지내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거나 다른 사람의 등을 치거나 하는 일은 거 의 없다. "뭐 그러면 좀 어때" 하는 정도에서 대개 일이 수습돼 버린다. 로렌스 캐스던 감독의 영화 중에 <다시 만날 때>란 게 있다. 1960년대 아이들이 십몇 년인가 만에 재회를 했지만 애증이 뒤범벅이 된 동창회가 되고 만다는 얘기로, 만약에 똑같은 설정하에서 한신칸 출신들을 주인공 으로 기용했다면, 그 영화는 그다지 애증이 엇갈리지 않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오랜만이야. 요즘 뭐 하고 지내?" "소설 쓰고 있어" "소설 쓰는 것도 힘든 일이겠지?" "그저 그렇지 뭐" "그래, 잘해 봐. 건강하고." 이런 정도로 별다른 얘기 없이 영화가 끝나 버릴 것 같다. 오모리 가 즈키가 <다시 만날 때>를 다시 제작한다면 어쩌면 이런 노선에 근접할지 도 모르겠다. 며칠 전 아시야로 돌아간 친구와 오래간만에 도쿄에서 만나 한신칸에 대한 갖가지 새로운 정보를 들었다. "일전에 우리 어머니가 신문에 가정부 모집 광고를 냈더니 스물대여섯 명이나 신청을 했지 뭐야. 그래서 아시야 시민 회관을 빌려서 면접을 했 더랬어"라고 그는 말했다. 가정부 면접을 하는데 시민 회관을 빌렸다니 스케일이 크다고 해야 할까, 기개가 웅대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굉 장하다. "그래서 어머니가 혼자서 하기는 힘들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었거든. 여하튼 스물 몇 명이니까 물어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할 것 아냐." 그의 얘기에 따르면 그 스물 몇 명 중에는 '어째서 이런 사람이'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아름답고 이지적인 사람도 있어서, 한 사람을 고르 는 데도 굉장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나도 한 번 아시야 시민 회관에서 가정부 면접을 보고 싶다. 하루키 구함 며칠 전 어떤 편집자를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그는 나가노 구에서 본 기묘한 벽보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 벽보에는 "하루키 구함"이라는 문구와 전화 번호만 달랑 씌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게 뭐예요?" "글쎄 뭘까요?"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하여튼 하루키를 구하니 전화해 달라는 얘긴데... 잘 모르겠네요." "개를 찾는 게 아닐까요?" "글쎄요. 개라면 종류라든가 특징 같은 걸 써놓았겠죠. 역시 인간 하 루키일 거예요." "특별히 어떤 한 사람의 하루키를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하루키이기 만 하면 아무나 상관없다는 걸까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뭐, 하여튼 이번에 다시 보면 전화 번호를 메모해 둘 테니까 직접 전화해 보는 게 어때요? 뭔가 좋은 일일지도 모 르잖아요." "좋은 일라뇨, 가령 어떤?" "아니, 뭐라고 꼬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하는 데서 얘기가 끝나 버린 채 그 사람과는 다시 만나지 못했고 전화 번호도 아직 모른다. 따라서 도대체 나가노 구의 누가 어떤 목적으로 '하루키'를 구하고 있는지도 여 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하루키'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몸이 사르르 녹아 버리는 성욕 과다 증 미인이 나가노 구에 살고 있어서 밤이면 밤마다 '하루키'를 찾는 건 가, 라고 가장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이름과 성욕이 정말 그렇게 강력히 맺어질 수 있는 건지 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확신이 안 선다. 또 다른 희망적인 추측은 엄청난 부자인 노부인이 전쟁에서 잃은 자식 과 이름이 같은 남자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주려 한다는 것인데, 현실 적으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세계를 제외하 고는 부자인 노부인이 그런 엉뚱한 짓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 문이다. 그보다는 커트 보네거트의 '익살극' 식으로 누군가가 '하루키' 확대 가족을 찾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전국의 하루키가 모여서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빙고 게임을 하며 친분을 돈독히 해나가 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임이 과연 얼마나 즐거울지를 난 잘 모르겠 다. 더할 나위 없이 즐겁든지, 엄청나게 따분하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 다. 어쩌면-하고 상상력이 점점 부풀어 가기만 하는데-이건 중대한 범죄와 연관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가노 구에 살고 있는 범죄자가 코난 도일의 <빨간 머리 동맹>을 읽고 하루키 동맹이란 걸 생각해 냈는지도 모른다. 나가노 구의 하루키를 한곳에 모아 놓고 백과 사전을 베끼게 하고는 그 사이에 터널을 파서 은행을 털 작정인 것이다. 범죄는 어찌 되었든 간에 빌딩의 한 방에 나가노 구의 '하루키'가 몇십 명 모여 부지런히 백과 사 전을 베끼고 있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고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런 곳 에 앞에서 말한 성욕 과다증 미인이 들어온다면 얘기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점점 나가노 구란 곳이 무정 부적인 장소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건 그렇고, "하루키 구함"의 진상에 대해서 아시는 분이 계 시면 <주간 아사히> 앞으로 제보해 주십시오. 좋은 일이 있으면-그리고 만약 그게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조금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약간 이상한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얼마 전의 발렌타인 데이 이튿날 아침에 센다가야의 하토모리 신사 부근의 노상에 하트 모양의 대형 초콜 릿 몇 개가 엉망으로 짓밟혀 있었다. 상당히 기분 나쁜 광경이었다. "이런 짓을 남자가 했을까요? 아니면 여자가 했을까요?" 하고 아내가 물었지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남자의 짓이라면 애처롭고, 여자의 짓 이라면 무섭다. 이건 나의 편견일까? 물론, (1) 여자로부터 초콜릿을 잔뜩 받은 모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내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전부 짓밟아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2) 불단 위에 놓은 공양 떡을 둘로 가르듯, 하나의 의식으로 초콜릿 가르기가 정착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보 내고, 그래서 사랑이 이루어지면 그날 밤 안으로 신사 근처에서 두 사람 이 초콜릿을 짓뭉개는 것이다. 그리고 '발렌타인 2탄'으로서 8월 14일에 남자가 여자에게 수박을 선물한다던가 말이다. 그런 여러 가지 부속 행 사가 있으면 재미있을것 같다. 혹은, (3) 초콜릿을 연인에게 전하려고 길을 가던 여자가 뒤쪽에서 사자와 표범의 습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 (4) 초콜릿이라고 생각해서 한 입 깨물어 봤더니 하트 모양의 고형 카 레였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하루키 구함"의 진상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 으면 좋겠는데. 42킬로미터 뛰고 난 뒤에 마시는 맥주 봄이 가까워 오면 왠지 모르게 장거리 경주에 참가하고 싶어져서, 며 칠 전 '아스카 히나마쓰리 고대 마라톤'에 출전했다. 스타트 지점은 아 스카의 이시부타이 앞으로, 오니노마나이타와 아스카 절, 타카마쓰 고분 같은 곳을 바라보며 42킬로미터를 주파하는 꽤 즐거운 코스였다. 날씨도 좋았고, 따뜻해서 이시부타이 옆에 벌렁 누워 필립 로스의 <해부학 강 의>를 읽으며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몸과 마음이 노곤하게 풀 려 왔다. 이제 봄이다. 풀 마라톤에 출전하는 것은 이것으로 세 번째지만, 지난 대회가 1983 년의 호놀룰루였으므로 대략 2년 만에 42킬로미터를 뛰는 셈이다. 호놀 룰루 전해에는 아테네에서 역시 완주했고 10킬로미터, 20킬로미터의 경 주에도 별일이 없으면 이따금 참가했지만, 호놀룰루 대회가 끝난 뒤에는 좀 생각한 바가 있어서 얼마 동안 레이스에 출전하는 건 삼가고 혼자서 느긋하게 뛰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완주를 했어도 세 시간 반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한 '극히 평범한' 아마추어 주자이므로 그렇게 잘난 척할 수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도 굳이 개인적인 감상을 묻는다면, 이름 있는 시민 마라톤 대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거대해 지고 있고, 어떤 종류의 대 회는 좀 지나치다 싶게 소란스럽다. 일본 텔레비전 방송국이 마구 설쳐 대는(실제로 이런 표현이 딱 어울린다) 호놀룰루 대회는 제쳐 두고라도, 좀 이름 있는 대회다 싶으면 참가자를 끌어 모으기 위한 상품이 있거나, 기념 티셔츠를 선물로 주기도 하고, '달리기 동호회'에서 똑같이 맞춘 옷을 입고 노보리(역주:좁고 긴 천의 한 끝을 장대에 매달아 세운 것)까 지 치켜 들고 우르르 몰려들거나, 그럴싸한 '완주증'을 발급하기도 하 고, 길기만 할 뿐이지 별의미도 없는 개회식,폐회식을 거행하는 등, 아 무래도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아진 듯하다. 물론 그저 놀이에 불과하 다면야 어찌할 수 없지만, 나로서는 그런 점들이 퍽 성가셔서-그런데 그 런 세세한 모습들이 문학상 파티랑 어쩌면 이다지도 비슷한 걸까-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당분간 삼가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회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 워싱턴 D.C.에서 달렸던 이름도 없는 10킬로미터 대회다. 이 대회는 주말 아침에 포트맥 강가의 출발 지점에 가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참가할 수 있는 지극히 부 담없는 대회로, 물론 권위도 없다. 참가자들은 50~60명 정도로, 나이도 천차만별, 모두들 자기 멋대로 입고 나와 삼삼오오 모여 있다. 안내 테 이블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참가비 2달러(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도)를 내면 "네, 저쪽에 있는 오렌지 주스는 마음껏 드십시오. 이쪽에 있는 롤빵도 마음대로 드시고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참가비를 냈다는 증거로 손에 스탬프를 찍고는 노트에 주소와 성명을 적는다. 출 전 번호니 표장이니 하는 건 일절 없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자, 준비... 땅" 하고 10킬로미터를 달릴 뿐이다. 달리기가 끝나면 "수 고하셨습니다. 몇 분 몇 초입니다"라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우리는 꿀 꺽꿀꺽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롤빵을 먹으면서 마지막까지 앞뒤를 다투 었던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물론 호놀룰루나 오메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호놀룰루는 나름대로 즐 거웠고, 오메는 가능하면 한 번쯤 달려 보고 싶다. 그래도 나는 워싱턴 D.C. 대회처럼 심플하고 꾸밈없는 대회에서 뛰는 것이 아마추어 주자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원점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적어 도 일본 각지에서 미니 호놀룰루 마라톤을 출현시켜야 할 필요성 따위는 전혀 없는 것이다. 제대로 된 코스와 정확한 시계, 물의 적당한 공급과 주최자의 따뜻한 배려만 있므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대회가 될 수 있으 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스카 마라톤'은 실제로 달려 보니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어려운 코스였다. 아스카를 걸어서 돌아다녀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이 근방은 꽤 굴곡이 심해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바로 다음 고개가 시작되어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차이가 약 100미터 정 도나 된다. 그러니까 평지에서 달릴 때의 감각으로 뛰다 보면, 후반에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게 된다. 나는 원래 언덕길에 그렇게 약한 편은 아 니지만, 요사이 진구 가이엔이나 쇼난의 자전거 도로 같이 평탄한 코스 만 달려서 35킬로미터를 넘었을 무렵부터는 언덕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 리가 어질어질해서 결국 오르막길에서는 걸어 올라가고 말았다. 정말 유 감스러운 일이다. 지금부터 다시 착실하게 크로스 컨트리로 단련해서 가 능하다면 다시 한 번 이 코스에 도전해 보고 싶다. 기록이야 어찌 되었든, 42킬로미터를 다 뛰고 난 뒤에 벌컥벌컥 단숨 에 들이마시는 맥주 맛이란 그야말로 최고다. 이 맛을 능가할 만큼 맛있 는 것을 나는 달리 떠올릴 수가 없다. 그러니까 대개 마지막 5킬로미터 정도는 "맥주, 맥주" 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달리게 된다. 이렇 게 가슴속까지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 42킬로미터라는 아득한 거 리를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떨 때는 너무나 잔인한 조건인 듯싶게도 느껴지고, 어떨 때는 지극히 정당한 거래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요즘 필립 로스의 소설이 갑자기 재미있어졌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 하나뿐일까? 그렇게 재미있다는 평판도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제 2 장 나날의 여백 위에 쓴 단상 생일이 재미없어졌다 앞서 어떤 글에서 나이를 먹고 나니 발렌타인 데이가 전혀 재미있지 않다는 얘기를 썼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서 재미없어진 것은 발렌타인 데이뿐만이 아니다. 생일날도 무척 재미가 없다. 자랑할 일도 못 되지 만, 최근의 내 생일만 하더라도 무엇 하나 재미있는 일이 없다. 물론 선물을 받지 못한 건 아니다. 우리 집사람은 꽤 선심 쓰기를 좋 아하는 편이라 "선물은 뭐가 좋아요? 뭐든지 사줄게요"라고 말하고, 또 대개는 실제로 선물을 사준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집사람이 돈을 내든 내가 돈을 내든 나오는 구멍은 한 구멍인 것이다. 10만 엔짜리 카 세트 테이프 리코더를 선물받고 그 당시에는 와아 하고 좋아라 해도, 월 말이 되면 "저기 말이죠, 이번 달 생활비가 모자라요" 하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생일 선물로 무얼 받든 전혀 기쁘지 않다. 우울하다. 그래서 올해의 생일은 슬그머니 넘어가 버리려고 했다. 긴자에서 레코 드 한 장을 산 뒤(내가 직접 샀다), 니혼바시에 있는 다카시마야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끝내기로 했다. 그 정도라면 분수에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니혼바시까지 걸어갔는데 다카시마야는 정기 휴일이었 다. 이럴 수가. 나는 다카시마야에 가면 나름대로 은밀하게 생일 축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니혼바시까지 걸어왔던 것이다. 결국 그 날은 버럭버럭 화를 내며 맥주를 마시고 배가 터지도록 회를 먹어 돈을 잔뜩 쓰고 말았다. 그 이튿날, 나는 출판 담당 여자 편집자와 만나 식사를 했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연하로, 나와 혈액형도 같고 생일도 같다. "생일이라 해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요"라고 그녀도 말했다. 나이 를 먹으면 이런 식으로 생일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너나할것없이 좋은 일이라곤 없군요" 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실컷 먹고 마시는 게 생 일을 보내는 가장 타당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걸핏하면 잃어버리는 전철표 나는 걸핏하면 전철표를 잃어버리는 타입의 인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 모양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막 개찰구를 빠져 나가 려고 하면 전철표가 보이지 않는다. 코트 주머니, 바지 주머니, 셔츠 주머니를 홀랑 뒤집어 보지만, 전철 표는 아무데도 없다.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전철 안에서 딱히 유별난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멍하니 자리에 앉아 문고판 책을 읽을 뿐이다. 전철표를 넣어 둔 주머니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째서 전철표가 사라져 버리는 걸까? 수수께끼다. 더구나 그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일어났다. 이래서는 전철표만 전문적으로 빨아들이는 블랙 홀이 내 주위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여하튼, 다 큰 남자가 개찰구 옆에서 옷 주머니를 뒤집고 있는 모습은 그다지 보기 좋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창피하다. 특히 선반 위에다 주 머니에 있던 것을 전부 꺼내어 놓고 "이건 지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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