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6편 (6/2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본문 바로가기

[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6편 (6/20)

💬 0 👁 1
☰ 목록
책갈피와 음성 읽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은 단연코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따금 어째서 세상에는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존재하 는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도무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 각해 봐도 유아기에 높은 곳에 올라가 무서워했던 기억이 없고, 그렇다고 고소 공포증이 혈통적으로 유전된 것 같지도 않다.
또 '억압된 심적 트러블 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딱히 짚이는 데도 없다.
그렇다 면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떤 경위로 고소 공포증이라는 병에 말려들게 되었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이제 '공포의 선택이란 무작위적인 것이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즉 인간은 한두 가지 정도는 이른바 정신의 보호막으로서 공포가 필요하고, 결국 그 대상은 무엇이든 괜찮다는 얘기다.
나의 경우는 그것이 우연찮게 고소 공포증이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폐소 공포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첨단 공포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암흑 공포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레이더스>에 나오는 저 유명한 인디애나 존스도 뱀 한테는 꼼짝을 못하지 않았나? 요컨대 공포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빼놓 을 수 없는 한 요인이고, 그것이 불합리하면 불합리할수록 그 유효성은 커 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주의 암흑 속에 두둥실 떠 있는 바위 덩어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불안정 한 생을 보내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는 상황 쪽이 나로서는 더없는 공포다.
피사의 사탑도 3층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그건 공포였다.
독서용 비행기 요즘 별로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는 글을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무래도 좀 쑥스럽지만, 요 한 달 동안 꽤 많은 책을 읽었 다.
일상적인 얘기를 글로 쓰면 이런 식의 일이 종종 일어난다. "담배를 끊 은 지 2년, 몸 상태가 무척 좋다"고 쓰자마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하거 나, "넥타이를 매는 건 1년에 두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고 쓴 직후에 연달 아 세 번이나 넥타이를 맬 처지에 놓이거나 하는 식이다.
무책임하다고 하 면 무책임한 일이겠지만, 뭐 세상이란 원래 다 그런 거다.
어째서 갑자기 책을 읽기 시작했는가 하면, 요 한 달 동안 전철이나 비행 기를 탈 기회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이동이 많으면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것이다.
우선 남반구 항로의 비행기로 도쿄-아테네 사이를 왕복했으므로(편도 약 스무 시간) 그 동안 책을 세 권 읽었다.
존 어빙의 <워터메서드 맨 (Water-method Man)>과 닥터로의 <다니엘 서>와 존 고어즈의 <해미트>다.
남반구 항로의 유럽행 비행기는 몸도 마음도 위장도 죄다 기진맥진하게 되 지만, 적어도 책만큼은 잘 읽힌다. <워터메서드 맨>은 3년인가 4년 전에 읽었을 때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 았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맨 처음 읽었을 때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가프의 세계>만큼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풍속 소설을 토막낸 듯한, 독특 하고 와일드한 재미가 있어서 푹 빠져 들게 되었다.
나의 개인적인 기준으 로 따지자면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읽었을 때 더 재미있는 책이 좋은 소설이 다.
하기야 두 번이나 읽고 싶어지는 소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지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닥터로의 <다이엘 서>도 <워터메서드 맨>처럼 시간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포인트를 잡기가 어 렵지만, 한번 포인트를 포착하면 내 몸이 소설의 시간에 자연스레 감응하여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읽을 만한 소설이다.
고어즈의 <해미트>는 그런 풍의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어 재미는 있었지 만, 실재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놓은 만큼 다소 짜임새가 빤히 들여다 보이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비행기 안에서 독서벽이 붙어 버렸는지 귀국한 뒤에도 일하는 짬짬이 시 간만 나면 핀천의 <경매 넘버 49의 외침>을 읽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영 어로 읽어 보려고 시도하다 좌절했던 소설인 만큼, 번역본이 나온 것은 나 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물론 핀천의 소설이니까, 술술 읽힐 뿐더러 재 미도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이만큼 우스꽝스러운 소설도 흔치 않을 테니 흥 미가 있는 분은 꼭 읽어 보길 바란다.
그 다음에는 존 어빙의 신작(여전히 무턱대고 긴 소설) <더 사이더하우스 룰스(THE CIDERHOUSE RULES)>의 후반부를 다 읽었는데, 이 소설에 대한 감 상은 도저히 한마디로 말할 수 없으므로 통과해야겠다.
그러고 나서 스파게티 소설을 세 권, 크럼리의 <댄싱 베어>와 리처드 콘 든의 <여자와 남자의 명예>(제목의 뜻은 불명)와 마이클 Z.류인의 <침묵의 세일즈맨>이다.
스파게티 소설이란 것은 내가 만들어 낸 말로, 스파게티를 삶으면서 읽기에 적당한 소설이라는 의미다.
물론 이들 작품을 깔보는 게 아니다.
스파게티를 삶으면서도 자꾸만 손에 들게 되는 소설이라고 해석해 주기 바란다.
세 권 중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명예>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다.
다음으로는 누가 읽어 보라고 권하길래 류탄지 유 전집을 세 권쯤 읽었 다.
나는 일본 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으므로 류탄지 유라는 사람이 문학사 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몇몇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모리타 요시미쓰의 <그로 부터>를 본 뒤로는 전전 일본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마쓰다 유사쿠처럼 느 껴지고 만다.
책을 읽고 있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마쓰다 유사쿠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었지만.
또 한 권, 저자인 스즈무라 가즈나리 씨가 보내 주신 <아직/이미, 무라카 미 하루키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책도 읽었지만 이것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에 대한 평론서이므로 감상은 쓰지 않겠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씌어진 글을 읽는다는 건 어쩐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기 분이 드는 일이다.
아마도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나는 가끔 독 자들과 만나 얘기를 할 때마다 항상 누군가를 대신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한편 아내는 그 동안 세 권의 책을 읽었다.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과 헨리에트 폰 쉴러흐슈미트(이름 한번 길다)의 <히틀러를 둘러싼 여인들>과 키티 하트의 <아우슈비츠의 소녀>다.
그녀가 도대체 어떤 취미와 목적으로 책을 선택하는지 지금까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한마디로 부부라 해도 그 사이에 가로놓은 골짜기는 어둡고 깊은 모양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읽는 책의 영역과 집사람이 읽는 책의 영역은 거의 겹치는 일이 없으므로(고작해야 랩 크래프트 정도가 두 영역에 양 다리를 걸치고 있다), 서로가 제멋대로 좋아하는 책을 사 모아 우리 집 의 책은 늘어 가기만 한다.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지만, 아마 어떻게도 안 되리라.
나의 주부 생활 결혼하고 2년째쯤 되었을 때의 일인데, 나는 반년 정도 '주부(하우스 허즈번드)' 노릇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이렇다 할 일도 없이 극히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반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한 페이지였던 것 같다.
하긴 그 당시에는 특별한 '주부' 노릇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우연 찮게 사소한 인연으로 아내가 일하러 나가고 나는 집에 남게 된 것이다.
이럭저럭 벌써 12-13년 전 얘기로, 존 레논이 '주부'가 되어 화제를 불 러일으키기 전이다. '주부'의 일상은 '주부(하우스 와이프)'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평온하 다.
우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아내를 출근시킨 뒤 뒷 정리를 한다.
싱크대 속에 있는 그릇들은 곧바로 닦아야 하는 것이 가사 의 철칙 중의 하나다.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들 같으면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하겠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 는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는 무형 문화재처럼 가난해서 라디오도 텔 레비전도 살 수 없었고, 신문을 구독할 돈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까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돈이 없으면 생활이란 놀랄 만큼 심플해 진다.
세상에는 '심플 라이프'란 브랜드도 있는데 '심플 라이프'에 관해 서라면 내 쪽이 훨씬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침 설거지가 끝나면 빨래를 한다.
빨래를 한다 해도 세탁기가 없으 니까 목욕탕에서 발로 꾹꾹 밟아 빠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시간은 걸려 도 꽤 좋은 운동이 된다.
그리고 빨래를 넌다.
빨래가 끝나면 시장을 보러 간다.
시장을 본다고는 해도 냉장고가 없 으니까(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가난하구나)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살 수는 없다.
그날 쓸 것만을 여분이 생기지 않도록 사는 것이다.
그러니 그날 저녁 반찬이 무된장국과 무조림과 잔멸치를 섞은 무즙이 되는 상황 도 심심찮은 빈도로 연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활을 '심플 라이 프'라 부르지 않는다면 달리 무엇이라 불러야 좋겠는가? 시장을 보는 김에 '고쿠분지 서점'에 들러 책을 사거나 값싼 헌책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림질을 하고는 대충 청소를 하고(나는 청소하는 걸 싫어해서 그다지 꼼꼼하게는 하지 않는다) 저녁때까지 툇마루에 앉아 고양이와 놀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서 느긋하게 지낸다.
무엇보다 한가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만도 <소년 소녀 세계 명작 전집>을 독파했고, <싸락눈> 같은 소설은 세 번이나 읽 었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면 슬슬 저녁 준비를 한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 고, 된장국을 끓이고, 조림을 만들고, 생선 구울 준비를 한 뒤 아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린다.
아내는 대략 일곱 시 전에 돌아 오지만 이따금 야 근을 하느라 늦어지는 날도 있다.
그러나-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지 만 우리 집에는 전화가 없으므로-연락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생선을 석쇠 위에 올려 놓은 채로 마누라를, "..." 하는 식으로 그저 가 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 이란 건 일상적으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잘 이해가 안 가겠지만, 매우 미묘한 종류의 감흥이다. '오늘은 늦어질 모양이까 먼저 밥을 먹어 버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도, '뭐 모처럼인데 좀더 기다려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렇지만 배 가 고픈걸' 하는 식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집약되어, "..." 이라는 침묵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 미안해요.
저녁 먹고 왔어요" 하는 소리를 들으면 역시 화가 난다.
그리고 이건 기묘하다면 기묘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다지 기묘한 얘기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자기가 만든 요리를 식탁에 늘어놓다 보면 아무래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모양이 뭉그러진 걸 내 접시에 얹 게 된다.
생선이라면 머리 쪽은 상대방 접시에 올리고, 나는 꽁지 쪽을 먹는다.
이런 행동은 딱히 내가 자신을 주부로서 비하시켜서가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요리사의 습 성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나는 해석한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주부적'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속성 중에서 대다수는 결코 '여성적'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즉 여자가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주부적인 속성을 익 혀 나가는 게 아니라, 그것은 단지 '주부'라는 역할에서 생겨나는 경향, 성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남자가 주부의 역할을 이어받으면 그 사람은 당연히 많든 적든 간에 '주부적'으로 되어 갈 것 이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말하자면, 세상의 남자들은 일생 중 적어도 반년이나 1년 정도는 '주부' 역할을 해보아야만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 서 단기간이나마 주부적인 성향을 몸에 익히고, 주부적인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아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현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통념의 대부분이 얼마나 불확실한 기반 위에 성립되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도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유유히 마음껏 주부 생활을 누려 보고 싶은데, 마누라가 도무지 일을 하러 나가 주지 않으니 그러지도 못 하고 난감할 뿐이다.
13일의 금요일 한때 점치는 데 열중했던 적이 있다.
물론 열중했다고는 해도 재미삼 아 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가만히 정신을 집중하면 가벼운 무아 지경 상태에 빠지고, 그럴 때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이런 저런 것들을 잘 알아맞혔다.
한 예로, 어떤 여자의 점을 치자 그녀의 연 인이 몇 살이며 어디 출신이고 형제는 몇 명인지가 비교적 막힘 없이 떠 올랐다.
그렇지만 한번 이런 일을 하고 나면 치져서 기진맥진하게 될 뿐더러, 친구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니만큼 복채를 받을 수도 없어서 어느 사이엔 가 그만두게 되었다.
이런 것을 바로 초자연 능력이라고 봐야 할지는 의견이 분분하겠으나, 지금의 내 생각으로는 이것은 일종의 '감' 같은 게 아닐까 한다.
특별히 점을 치지 않아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다른 사람과 접하다 보면 상대 방의 몸짓이나 말투, 미묘한 분위기 같은 것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추측 할 수 있게 되고, 무아 지경 상태에 몰입하다 보면 그런 '감'이 좀더 연 마되어 그 영역이 더욱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무아 지경 상태'라고 하기에는 좀 주제넘을지도 모르지만, 장편 소설 을 쓰고 있다 보면 때때로 머리 속이 텅 비어 그런 비슷한 상태가 되는 적이 있다.
이름하여 '라이팅 하이'라는 건데, 이것도 딱히 초자연 현상 이 아니라 단지 단순한 '감'의 확대일 뿐이다.
그런 상태에 빠졌을 때 재떨이나 지우개가 방안을 날아 다니는 일이 일어난다면 내 소설도 한층 무시무시해지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 다.
개인적으로 나는 점이란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운수라든가 징크스 같은 것에도 흥미가 없다.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원칙적으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와 자동차의 관계랑 비슷하다.
그 유효 성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다.
점이나 운수라는 건 한번 신경 쓰기 시작하면 늘 연연해 하게 마련이 고, 무엇이든 한번 연연해 하기 시작하면 그 영역은 점점 확대되어 가는 법이다.
나는 성격상 그런 부담이 증폭되어 가는 걸 참지 못하므로, 다 소 재수가 없더라도 하려고 마음먹은 일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
이것은 성격이 강하냐 약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 방식의 문 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결혼할 때 점쟁이에게서 "허 참, 이거 형편없는 궁합 이군요"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했다.
결혼해 보니 정말 형편없는 궁합이라는 게 판명되었지만, "뭐 어때" 하며 체념 하고 15년 가까이를 함께 살고 있다.
정말로 형편없는 궁합이란 의외로 좋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자주 이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점을 신봉하고 있는 친구 에게서 "그 집은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
그 쪽은 무라카미 씨한테는 최 악의 방향이라구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나는 노상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방향에서 이사할 집을 발견하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듯싶다.
그 사람은 또 "지금 그 곳으로 이사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예요.
아픈 사람이 생길 거고, 일은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구요.
부모상을 당할 거고, 화재가 날 겁니다.
나카소네 수상이 삼선을 할 겁니다(이건 거짓말).
앞으로 두 달만 기다려요.
두 달만 지나면 모든 게 잘 풀릴 테 니까"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두 달은 커녕 잠시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이사해 버 린다.
한번 그렇게 양보를 하면 앞으로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나 두 달이 반년이 되고, 1년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에 한번 지면 결국 언제까지고 계속 지게 된다.
그러니까 '아, 괜찮아.
될 대로 되라지 뭐' 하는 배짱으로 당당하게 뚫고 나간다.
이런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는 한 운세 따위에 질 리 없다.
그러는 사이에 그 사람도 포기했는지 우리 이 사에는 일절 참견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성격은 옛날부터 죽 그랬던 것으로, 고등 학교 때는 어머니가 대 학 입시를 위해 신사(역주:일본에서 황실의 조상이나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에서 사온(사온 건지 받아 온 건지) 잡귀를 쫓 는다는 화살을 둘로 뚝 부러뜨려 내다 버린 일이 있다.
그런 짓을 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살 하나쯤 부러뜨렸 다고 해서 대학에 떨어진다면, 대학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 도 있었다.
뭐랄까, 자포자기 비슷한 실험 정신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국립 대학은 떨어지고 두 군데의 사립 대학 에 합격했다.
그냥 'TKO승' 같은 거다.
부모님은 "사립 대학은 돈이 많 이 든다는데" 하고 중얼중얼 불평을 늘어놓으셨고, 그 점에 대해서는 내 가 잘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실제적으로는 국립 대학에 가지 않아서 그 후에 어떤 불이익을 당했던 기억은 없다.
어쩌면 있었는지도 모르지 만,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점괘를 믿거나 안 믿거나, 미신을 신봉하거나 신봉하지 않거나 그것은 각자 알아서 좋을 대로 할 일이고, 다른 사람이 이러쿵저러쿵할 문제도 아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굳이 흉일에 결혼식을 올리려는 타입의 사 람들이 좋다.
흉일이 됐든 뭐가 됐든 우리는 잘해 나갈 거라는 신념이 있으면 무엇이든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책임은 지지 못하겠지 만.
잡지를 즐기는 법 출판 관련 업계의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무라카미 씨는 현재 어떤 잡지를 가장 재미있게 보고 계십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 일 이 많다.
요즘은 잡지 전쟁이 워낙 치열하므로 그만큼 만드는 쪽도 상당 히 진지하게 상황을 분석해 나가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해봤자 나는 잡지를 열렬히 읽는 독자가 아니고, 가끔 마음이 내키면 손에 들고 페이지를 훌훌 넘기는 정도기 때문에 어 떤 잡지가 현재 가장 재미있고, 어떤 잡지가 제일 급진적인지 따위는 도 저히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첫째로 이렇게 엄청난 양의 비슷비슷한 잡지들이 서점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지금, 나로서는 선택 그 자체 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것 같다.
대체 누가 오후 4시 30 분의 어슴푸레함과 오후 4시 35분의 어둑어둑함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인 가? 사람들은 어쩌면 그런 것을 차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행 인지 불행인지 약간 막연한 규칙하에서 살고 있으므로 그런 식의 선별 작업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요컨대 잡지의 수가 너무나도 많아서 어느 게 어떤 잡지였는지 정확하 게 기억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친구 하나가 "좋은 잡지란 폐간된 잡지다"라고 했는데, 그 기분이 이해가 간다.
구태여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지만, '그것도 몇 년쯤 전에 폐간되었으면 아쉬웠을 텐데' 하는 잡 지도 몇 개쯤 머리에 떠오른다.
폐간돼 버린 잡지는 오히려 두 번 다시 손에 넣을 수 없으므로-당연하다-'꼬박꼬박 발간될 때 소중히 여길걸' 하고 금방 후회하게 된다.
지금은 없어진 <해피 엔드 통신> 같은 잡지는 내가 좋아 나서서 일을 했지만 폐간되어 섭섭하다.
그런 얘기를 당시 <해피 엔드 통신>의 편집 을 맡았던 가가 야마히로 씨에게 했더니, 그는 시니컬하게 입을 삐쭉거 리면서 "다들 그렇게 말해 주지만 폐간되고 난 뒤에 동정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구요"란다.
뭐, 만드는 쪽에서 본다면 지당한 말이겠지만 말이 다.
그리고, 이런 말을 가가 야마히로 씨에게 하면 이것 역시 '때늦은 동 정론'의 한 변형이 될지 모르지만, 내가 비교적 글을 쓰기 쉬웠던 잡지 는 잘 폐간되어 버린다.
이 <해피 엔드 통신>도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던 데 비해선 일을 열심히 했고, 주오코론샤에서 나오던 <우미>에서도 갓 등단한 신출내기치고는 피츠 제럴드나 카버의 작품을 많이 번역했다.
그 리고 문화출판국에서 발간했던 <투데이>라는 잡지에서도 여러 가지로 재 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나 같은 사 람이 유유히 기분 좋게 일을 할 수 있었던 잡지는 어쩌면 자연 소멸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초샤의 <대 컬럼> 같은 건 두 번 다시 나오 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대충 읽는 잡지 중에서도 비교적 열심히 보는 걸 꼽으라면, 우선 <플 레이 가이드 저널>이라는 간사이 지방의 정보지를 들 수 있다.
이 잡지에는 간사이 지방 일대의 영화나 콘서트 그 밖의 갖가지 정보 밖에 실려 있지 않으므로 도쿄에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 고, 당연하지만 도쿄의 일반 서점에서는 팔지도 않는다.
💬 한 줄 댓글 0
비회원 · 이 글에 하루 1개만 등록 가능
HTML/스크립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은 최대 120자이며 페이지를 이동하지 않고 바로 등록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Copyright © webstoryboard.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