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5편 (5/2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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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5편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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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게 생각하지만, 한 사람의 글쟁이로서는 책이 별로 읽히 지 않게 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섭섭한 한편, 우리(출판업에 관여하는 다양한 사람들)가 그 의식 과 체질을 전환하여, 새로운 지평에서 새로운 종류의 우수한 독자들을 발굴 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한숨만 쉰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술을 혼자 마시는 습관 나는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일이 많다.
집에서도 음악을 듣거나 비디오를 보면서 맥주나 위스키, 와인을 혼자서 홀짝홀짝 마시고, 혼자 밖에 나가서 도 훌쩍 바 같은 데 들어가 두세 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나는 자 폐증은 아니니까-일전에 3년 만에 업계의 파티에 참석했더니 모 여성 작가 가 "어머나, 무라카미 씨도 파티에 다 나오시네요.
자폐증이 아니셨네" 하 며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며 술을 마시는 일도 있 다.
그러나 횟수로 따져 보면 혼자서 마시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원래 친구가 그다지 않지 않은 데다 지방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탓도 있다.
누누 이 말하지만, 나는 절대로 자폐증 같은 건 아니다.
내가 자폐증이라면 무라 카미 류 씨는 자개증이다.
하긴 바에서 혼자 술을 마셔도 결코 필립 멀로우라든가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처럼 딱 작정하고 조용히 앉아 분위기를 잡으며 마시는 건 아 니고, 그저 멍청히 술을 마신다.
조용히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과 멍청하게 혼자서 술을 마시는 건 한눈에 척 보기에도 상당히 다르다.
한신 타이거스 를 놓고 얘기하자면 마유미와 오카다 선수 정도로 다르다.
같잖은 말도 하 지 않고, 트렌치 코트 깃도 세우지 않고, 물끄러미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 지도 않는다.
그저 멍청하게 술을 마시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저쪽에서 쓸쓸한 눈으로 마티니를 마시고 계신 분께 내가 한잔내겠어요"라는 얘기를 해주는 여성도 나타나지 않는다(나타날 턱이 없지).
어째서 이런 식으로 멍하니 있는가 하면, 우선 내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의 시력 차가 몹시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상시 바깥 세계에 있을 때는 나는 양쪽 눈의 근육을 긴장시켜서 양쪽의 상을 인위적으로(물론 극히 자연스럽 긴 하지만) 일치시킨다.
그러나 술집에 들어가 혼자서 술을 마시거나 할 때 는 그 근육을 이완시켜서, 말하자면 '오카다 현상'이 생겨 얼굴 전체가 멍 청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집사람한테 "당신은 왜 나 만 보면 항상 그렇게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고 야단을 맞는 다.
그러나 나라고 해서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긴장을 하고 있으란 법은 없잖은가.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전부터 꽤 오랫동안 술집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바텐더를 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탠드에서 혼자 조용히 술 을 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신경 쓰이게 마련이 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많다.
상대방은 손님이고 다 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것도 아니므로, 아무래도 좋은 거겠지만, 그 래도 역시 그런 하드보일드 풍의 사람이 눈 앞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침착 할 수가 없다.
종종 유리컵을 깨거나 칵테일의 배합을 잘못하거나 한다.
그 러니까 나는 손님으로서 조용히 있는 것보다는 멍청하게 있는 쪽을 택한 것 이다.
멍청히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이란 바텐더에게 있어서는 최고 의 고객이다.
어찌 됐건 그런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 다.
이런 식으로 혼자서 술을 마시는 버릇이 들어 버리면 여자가 옆에 앉아 얘기를 하는 바 같은 데 들어가는 게 무척 난감하다.
일단 눈도 긴장시켜야 할 뿐더러 화제를 계속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대체로 처음 대면한 사람과는 거의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이다.
며칠 전 호텔에 투숙해 일을 하고 있는데, 밤 열한 시 무렵에 맥주가 마 시고 싶어져서 훌쩍 거리로 나섰다.
호텔의 바에서 마시는 것도 괜찮지만, 어쩐지 거리의 등불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눈에 뜨인 스낵 바 같은 곳에 들어가 맥주를 주문하자 까만 양복을 입은 남자가 정중하게 맥주 를 날라 왔다. '엇, 이거 잘못 들어왔나?'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니나 다를까 이어서 짤막한 드레스를 입은 스무 살 정도의 아가씨가 와 내 옆에 앉더니 "안녕하세요, 혼자세요?" 하고 물었다.
이럴 땐 정말 눈앞이 아찔하다.
나로서는 일의 긴장을 풀기 위해 혼자서 멍하니 맥주를 두세 병 마시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런 때 옆에 이 방면의 달인이자 대가인 안자이 미즈마루 씨가 있었다면 레슬링을 할 때처럼 재빨 리 교대를 하고 빠져 나갈 수 있을텐데, 혼자서는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술집에서 여자와 얘기를 하면서 가장 난처한 경우는 직업이 뭐냐고 물어 올 때다.
상대편 역시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할말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날씨 얘기 다음에는 직업을 화제에 올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일을 끝내고 느긋하게 쉬려고 오는데, 나로서는 술을 마시면서 일 얘 기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음, 그러니까 뭐랄까 자유업 같은 건 데..." 하고 얼버무리다 보면 화제가 금방 동이 나고 만다.
야구 얘기를 하 는 경우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 얘기를 해봤자 분위기만 침울해질 뿐이다.
그럭저럭 별로 대단한 얘기를 한 것도 없이 맥주를 세 병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나도 피곤했지만, 상대방 여자도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참 안됐다 싶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뜨개질 바'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여자들은 묵묵 히 뜨개질을 하고 있고, 그 옆에 손님이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시는 형식의 바 말이다. "뭘 뜨고 있지" "응...
장갑." 이런 느낌이라면 나도 차분히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맥주가 좋다 옛날에,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아직 얼마 안 됐을 무렵에, 당시 잡 지 <태양>의 편집장이었던 아라시야마 고자부로 씨에게서 "아, 무라카미 군.
자네는 늘 맥주만 마시는 것 같은데, 그건 아직 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맥주에서 다른 술로 기호가 바뀔 거라구" 하는 말을 들 은 적이 있다. "네에, 그렇습니까?" 하고 그때는 반신반의하며 대답했지만, 확실히 그로 부터 6년 남짓 지난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체적인 주량 중에서 맥주 가 차지하는 비율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맥주를 마시는 양 자체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고, 거기에 더해 위스키나 와인을 더 많이 마시게 된 것이다.
나는 젊었을 적에 는 별로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었지만, 워낙 위가 튼튼했기 때문에 나 이를 먹어 감에 따라 평균적이거나 평균을 훨씬 넘을 정도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일 하나가 끝나고 술잔을 기울일 때의 기분이란 분명 인생에 있어 서의 작은 행복이다.
외국 속담에 "인생에 있어서 행복은 세 가지밖에 없 다.
식전의 술 한 잔과 식후의 담배 한 대다"라는 게 있는데, 이것도 꽤 설 득력이 있다.
하긴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이를 먹고 주량이 늘었다는 사람은 많지 않 다.
나와 같은 연배인 사람들 대부분은 속에 무슨 탈이 나서 "아니, 난 그 렇게 많이 마실 수 없어서"라며 두세 잔으로 그만둔다.
젊었을 때 주량이 셌던 사람에게 이런 경우가 많다.
정열적인 투수가 어깨를 못쓰게 되는 것 과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너무 마셔대서 내장이 피폐해져 버린 것이다.
게 다가 30대 후반에 접어든 샐러리맨의 대개는 관리직의 지위에 올라 스트레 스를 받게 되고, 처자식에 대한 책임도 있으므로 비교적 건강에 신경을 쓰 게 된다.
인생이란 마시고 싶은 만큼 실컷 마실 수 있는 때가 황금기다.
시부야 역 앞 같은 데서 단숨에 술을 마신 뒤 왁자지껄하고 있는 학생들 을 보면서, 나는 이 사람들 중 반쯤은 앞으로 15년도 채 지나지 않아 주머 니에 위장약을 숨겨 놓고 술을 마시겠지 하고 상상한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그들의 환호성 속에서도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게 느껴져 제법 정취가 있다.
하긴 나에게도 학창 시절에 하루가 멀다 하고 술집에서 술을 퍼 마셨던 시절이 있었다.
대개는 싸구려 정종으로, 그것을 벌컥벌컥 마셔대니 당연히 뒤끝이 안 좋았다.
누군가가 형편없이 취해 나동그라지면 대학 구내에서 '미제 타도'라고 씌어진 플래카드를 들고 와, 그것을 들것삼아 하숙집까지 옮긴다.
한번은 옮기는 도중에 플래카드가 찢어져 친잔소 옆 계단에다 신 나게 등을 부딪힌 일이 있지만서도.
그러나 그런 얼빠진 소동도 한 넉 달쯤 가다가 끝이 나고, 그 이후로는 모두들 와글와글 소란을 피우며 술을 마시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 덕분 에 나는 나의 그 튼튼한 위를 한층 광을 내가면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고, 술을 마셔도 뒤끝이 안 좋은 일도 없고, 명치 언저리가 쓰린 일도 없다.
실제로 볼 수가 없어서 유감이지만, 내 위 는 제법 괜찮은 색깔에 돌고래처럼 매끌매끌하고 생기가 있을 것 같다.
바 다에 풀어 주면 어딘가로 헤엄쳐 가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술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지금은 정종이란 걸 거의 마시지 않는데, 이것 은 학창 시절 내내 정종으로 줄곧 고생을 하던 후유증 때문이다.
그 책임은 100퍼센트 내 쪽에 있지 정종 탓이 아니다.
만약 정종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된다면, 나는 일절 자기 변호를 하지 않고 그 죄 값을 치를 생각이다.
그와 반대로 맥주 나라에 가면 나는 필시 VIP급 국빈으로서 대우받을 것 이다.
개인적인 소모량만 해도 굉장하고, 소설 속에서도 꽤나 맥주를 지지 하고 선전해 왔다.
내 소설을 다 읽고 나자마자 곧장 가게로 달려가 맥주를 사왔다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
소설의 질이야 어찌 됐든 적어도 어떤 종류 의 효용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와인은 최근에 꽤 마시게 되었고, 지금도 부동액 소동에 아랑곳없이 열심 히 마시고 있다.
원래는 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몇 번인가 꼬임에 빠져 야마 나시에 있는 양조장을 달락거리다 보니 폭 빠지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곤 해도 내가 마시는 와인은 그리 고상한 건 아니고, 가장 싼 캘리포니아 산 와인을 사와서 페리에를 섞고, 거기에 레몬즙을 짜 넣어 주스 대신으로 꿀 꺽꿀꺽 마시는, 퍽 엉망진창인 와인이다.
그러나 이게 또 꽤 맛있다.
리처 드 브로티건을 알코올 중독자로 만든 것으로 유명한 가로의 푸어보이 보틀 (손잡이가 달린 대형 술병) 같은 건, 겉보기에도 와일드해서 그런 목적에는 딱 어울린다.
느긋하게 음미하며 마시기엔 로트실트의 붉은 와인이 최고지 만, 이건 한 병에 2만 엔 이상이나 가니 그렇게 자주 마실 수는 없다.
위스키는 비교적 값비싼 것을 좋아해서, 외국에 갈 때마다 시바스 리갈하 고 와일드 터키를 면세점에서 사와서 주로 온더록으로 마신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빈 병, 빈 캔을 한 달엔 한 번밖에 수 거하지 않는다.
그때 한 달에 걸쳐 마신 와인이나 위스키 병, 맥주 캔을 지 정된 장소까지 들고 가는데, 이게 또 상당한 양이라서 양손에 봉지를 들고 두 번 정도 왕복해야만 한다.
그러니 그때마다 제대로 쓰레기를 버리는지 안 버리는지 체크하는 이웃 아줌마가 "무라카미 씨도 굉장한 술꾼이군요" 하며 질린 표정을 짓는다.
매달 그런 소릴 듣는 것도 몹시 고통스럽다.
최근에는 어찌 된 일인지 정종이 굉장히 좋아져서 대낮부터 국숫집에 앉 아 조금씩 마시는 횟수가 늘었다.
미즈마루 씨의 말에 의하면 그건 인간적 으로 성장했다는 뜻이라는데, 정말일까? 나와는 무관한 정치의 계절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선거 때 투표란 걸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왜냐 고 물어도 한마디로 제대로 대답할 수 없어서 "글쎄, 어째서일까요" 하고 어물어물 넘기고 마는데, 좌우지간 투표는 안 한다. "그건 국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거 아니야?" 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 러나 투표는 안 한다.
정치적 관심이나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투표는 안 한다.
얘기에 따르면 그리스 같은 나라에서는 선거 때 투표하는 것을 국민의 의 무로서 법률로 정해 놓았고, 명백한 이유도 없이 기권을 하면 모든 시민권 을 박탈하기도 한다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없으니까 투표를 하지 않아 도 일단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
어느쪽이 제도로서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방식이 좋다고 생각 한다.
투표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다 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까.
내 주변에도 선거 때 투표하지 않는 사 람들이 꽤 있다.
어째서 선거 때 투표를 하지 않는가에 대한 그들(나를 포함해서)의 이유 는 대체로 비슷하다.
첫째로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 둘째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선거의 내용 자체가 매우 수상쩍은 데다 신 뢰감을 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세대에는 '가두 시위' 경험을 지 닌 사람들이 많고, 시종일관 "선거 따윈 기만이다"라는 선동을 믿어 왔으므 로, 나이를 먹고 제법 안정이 되었어도 고분고분하게 투표소에 가질 않는 것이다.
정당의 선거 운동과는 무관하게 한결같은 신념으로 지내 왔다는 생 각도 든다.
넌 그때 뭘 했는데 하고 물으면, 무얼 했는지를 거의 기억할 수 없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선거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건 아니므로, 뭔가 명확한 쟁점이 있고, 현재의 정당들이 하고 있는 선거 운동의 도식 같은 게 없어진다면 우리는 투표를 하러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기권이 많은 것은 민주주의의 쇠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나는 그런 경우를 제공할 수 없었던 사회 시스템 그 자체 속에 민주주의 쇠퇴의 원인이 있다고 본다.
원칙론을 앞세워 기권자에 게만 책임을 지우려 하는 건 잘못일 것이다.
마이너스 4와 마이너스 3 중 한 쪽을 선택하기 위해 투표소까지 가라고 해봤자, 난 안 간다, 그런 데는.
지바에서 살았을 때 지방 선거가 있었다.
내가 마당에서 고양이와 놀고 있는데 동네 반장 격인 아줌마가 밭에서 갓 뽑은 시금치를 들고 와서는, "저기 말이죠, 이 근처 사람들은 모두들 아무개 씨한테 투표를 하기로 결정 했어요"라고 했다.
내가 잘 이해를 못하고 "네에, 그렇습니까?" 하자 그 아줌마는 "아무개 씨한테 표를 던지면 도로 정비라든가 하수구 청소 같은 문제를 해결해 준대 요"라고 말하며 시금치를 두고 돌아갔다.
내가 그것이 투표 의뢰라는 걸 안 것은 얼마 지나서였다.
그때는 허참, 과연 지바로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나 는 여러 지방에서 살아 봤지만 시금치로 투표 의뢰를 받은 곳은 지바말고는 없었다.
물론 시금치는 맛있게 먹고, 투표를 하러 가지는 않았다.
나야 꼬 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으니까 하수구 청소 같은 건 해주는 게 당연하다.
경 험상으로도 아무개 씨에게 투표를 하기보다는 매일 시청에 전화를 걸어 불 편을 호소하는 게 빠르고, 올바른 절차다.
이런 일이 있으면 투표를 하러 가기가 더더욱 싫어진다.
지바에서 사는 것 자체는 무척 즐거웠지만 말이 다.
그러나 내가 이대로 투표를 한 번도 하지 않고 일생을 마치고 말 것이냐 하면, 절대 그런 건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나의 직감에 지나지 않지만, 금 세기 중에 반드시 다시 한 번 중대한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싫어도 스스로 입장을 정해야만 할 것 이다.
다양한 가치관들이 철저하게 전환되어, '무엇이든 적당히'로는 끝나 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 역시 영화 <빅 웬즈데이>의 라스트 신 처럼 투표 용지를 손에 들고 투표소로 향하게 될지 모른다.
뭐 이건 단순한 예측일 뿐이고, 내가 하는 예측의 대부분은 빗나가니까 대수롭지 않은 얘기지만, 하여튼 그런 상황이 머지않아 닥쳐올 것 같은 기 분이 자꾸 든다.
이것은 1920년대의 미국과 그에 뒤따른 대공황에 관한 역 사서를 읽어 보면 오싹할 만큼 피부로 느껴지는 일이다.
미증유의 번영과, 화려하고 호화로운 문화를 구가하던 1920년대의 미국은 하루아침에 와해되 고, 그 후로는 어둡고 무거운 나날과 전쟁이 찾아온다.
물론 서로 다른 두 시대와 사회를 포개어 놓고 보려는 생각에는 근본적으 로 무리가 있지만, 경제적 번영의 밑바탕이 얄팍한 점이나 흥청망청대는 사 회의 분위기, 그리고 세계적인 부의 편중 상황을 보고 있으면 1920년대의 미국과 현시대 사이에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수많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저 대공황에 필적하는 크래시(붕괴)가 닥친다면, 당시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방만한 문화 주변에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 사들 대부분은-어쩌면 나도 그중 한 사람인지 모르겠지만-흔적도 없이 어디 론가 날려 가버릴 것이 눈에 훤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해봤자 별설득력이 없겠지만, 우리는 이제 슬슬 그러한 크래시=가치 붕괴에 대비하여 스스로를 재확인해야만 할 시기에 이르렀는지 도 모르겠다.
나의 고소 공포증 나는 높은 곳이라면 딱 질색이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아마 죽을 거야'라 는 생각이 드는 장소에 가면 허리께가 찡한 게 더 이상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런 나에 비하면 아내는 높은 곳을 밥보다 좋아해서 함께 여행을 가기라 도 하면 반드시 높은 곳에 올라가 깡총깡총 뛰기도 하고 한 발로 서 있기도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런 행동을 나로선 이해할 수 없다.
단순히 남이 싫어 하는 짓을 굳이 하려 드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은 곳이라고 해서 어디든 다 무서워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같은 높이라도 산이라든가 절벽같이 자연적으로 생긴 높은 곳은 빌딩이라든 가 탑 따위의 위에 비하면 그다지-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무섭 지 않다.
제일 무서운 것은 뭐니뭐니 해도 그렇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높 은 곳이다.
내 책의 표지 그림을 자주 그려 주시는 사사키 마키 씨의 집도 고층 아파 트의 9층인가 10층인데, 나는 그 곳에 가는 게 굉장히 겁난다.
엘리베이터 에서 내려 뻥 뚫린 바깥 계단을 한 층 내려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안쪽 벽 에 찰싹 달라붙어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가고 있으며 매번 담당 여성 편 집자가 "무라카미 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라며 눈을 흘긴다.
옆에서 보 면 분명 '도대체 지금 뭘 하는 거야?'겠지만, 어쨌거나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공포의 질을 설명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긴 나 역시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그런 유의 비디오를 보여 주면서 "어이, 저것 봐.
전기 톱에 손목이 날아갔어" 하고 놀려대니까 남의 말을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가장 겁났던 곳은 빈에 있는 성 슈테판 사원 위였다.
그때도 나 는 전혀 그런 곳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아내가 "어때요, 무섭 지 않아요.
올라가 보자구요.
사람이라면 한걸음 한걸음 진보해야 돼요" 하 며 끈질기게 설득하길래, '그럼 어디 한번' 하는 생각으로 그만 엘리베이터 를 타고 말았다.
퀼른 대성당에 올라갔을 때는 계단이었기 때문에 도중에 겁이 나서 도로 내려왔지만, 엘리베이터는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그 곳은 바람이 휑휑 부는 깎아지른 듯한 지붕 위 였다.
더욱이 한번 아래로 내려간 엘리베이터는 다음 손님이 올 때까지는 올라오지 않았다.
물론 지붕을 따라 철조망으로 된 울타리가 쳐져 있기는 했어도, 나로서는 그런 울타리 따위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얼어붙을 듯한 겨울바람이 쌩쌩 불어와서 도무지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무서움을 느껴야 하는 거라면 인간은 진보 같은 거 안 해도 좋다 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공포도 하나의 재산이다.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훌륭하고, 느끼면 바보라고 단편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에는 꽤 무서운 곳이 많다.
특히 퀼른 대성당은 하늘에 닿을 듯이 뾰족하게 치솟아 있으므로 실제로 꼭대기 에 올라가 보면 어중간한 고층 빌딩의 옥상같은 데보다 훨씬 스릴이 있을 뿐더러 공포의 질도 높다.
비교 문화론을 펴려는 건 아니지만, 성 슈테판 사원 지붕 꼭대기에서 느끼는 고소 공포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느끼는 고소 공포와는 상당한 질적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도 고소 공 포증이 없는 사람에게는 필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럴 시간만 있다면 전세계의 이런 저런 높은 곳을 둘러보고 <고소 공포의 시점에서 본 고소 문 화론>같은 걸 써보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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