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3편 (3/2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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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3편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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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그런 곳 이 있다면 나는 꼭 거기에서 살아 보고 싶다.
간혹 '보행자 천국'이란 곳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를 천국이라고 부르다니 말도 안 된다.
차를 갖고 있 지 않은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그것이 정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사정이 있어서 이 글을 쓴 후에 면허증을 땄다.
기본적 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국철은 그 후 JR로 이름을 바꾸었다.
에노덴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양이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며칠 전 우리 집 고양이가 죽고 말았다.
이 고양이는 무라카미 류 씨에게 서 얻어 온 아비시니언 종으로 이름은 '기린'이었다.
류 씨 집에서 왔기 때 문에 '기린'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맥주(역주:일본의 유명 맥주 상표에 '기린'이 있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이는 네 살로, 사람으로 따지자면 아직 20대 후반이나 서른 정도니까 요절인 셈이다.
이 고양이는 방광에 결석이 쌓이기 쉬운 체질이고 전에도 수술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항상 다이어트 캣 푸드(라는 게 이 넓은 세 상에는 존재하는 것이다)를 줬는데 결국 방광이 악화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 다.
애완 동물 전문 업자에게 화장을 의뢰해서 그 뼈를 작은 항아리에 담아 가미다나(역주:집 안에 부적을 모시는 선반)에 올려 놓았다.
내가 지금 살 고있는 집은 일본식 집이므로 가미다나가 딸려 있어 이럴 때는 매우 편리하 다.
새로 지은 방 두 개짜리 맨션 같으면 고양이 뼈를 둘 장소를 찾아내는 게 큰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냉장고 위에다 아무렇게나 올려 놓을 수도 없 는 것이고.
우리 집에는 이 '기린' 외에도 또 한 마리 열한 살짜리 암컷 샴 고양이가 있는데, 이름은 '뮤즈'다.
이 이름은 순정 만화 <유리의 성>의 등장 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전에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콤비의 이름을 딴 '부치'와 '선댄스'라는 두 마리의 수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를 기르다 보 면 일일이 이름을 붙이는 것도 귀찮은 일이라, 대개는 지극히 쉽게 이름을 짓고 만다.
한때는 '줄무늬'라는 이름의 줄무늬 고양이를 길렀었고, '얼룩 이'란 이름의 삼색 고양이가 있었던 적도 있다.
스코티쉬 폴드라는 종류의 고양이를 길렀을 때는 '스코티'란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파생 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검둥이'란 이름의 검은 고양이를 길렀던 적도 있다.
근 15년 동안 우리 집을 오갔던 고양이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각각의 운명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A:죽은 고양이-기린,부치,선댄스,줄무늬,스코티 B:다른 사람에게 준 고양이-얼룩이,피터 C:자연스레 없어진 고양이-검둥이,통통이 D:현재 남아 있는 고양이-뮤즈 생각해 보면 집 안에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었던 기간은 15년 동안 고작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고양이도 성격이 다양해서 한 마리 한 마리가 저마다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고, 행동 양식도 다르다.
지금 기르고 있는 샴 고양이 는 내가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출산을 하지 못하는 참으로 별난 성격의 고 양이다.
이 고양이는 진통이 시작되면 곧장 내 무릎으로 달려와서 '영차' 하는 느낌으로 앉은뱅이 의자에라도 기대는 듯한 자세로 주저앉는다.
내가 양손을 꼭 잡아 주면 이윽고 한 마리 또 한 마리하고 새끼 고양이를 낳는 다.
고양이의 출산은 보고 있으면 매우 재미있다. '기린'은 건강하고 탄탄하고 살이 찐 데다 식욕이 왕성한 수고양이로-이 묘사는 무라카미 류 씨의 개성과는 관계없다-성격도 개방적이어서 우리 집 에 오는 손님들에게 꽤 인기가 좋았다.
방광의 상태가 나빠져서 약간 기운 이 떨어지긴 했지만, 죽기 전 날까지도 도저히 그대로 죽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동네 수의사 선생님께 데려가 고였던 오줌을 빼고 결석을 녹이는 약도 먹였는데, 하룻밤 지나고 보니 부엌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눈을 번쩍 뜬 상태 그대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고양이는 언제나 참으로 깨끗하게 죽는다.
죽은 얼굴이 하도 깨끗해서 양 지바른 곳에 놓아두면 해동되어 되살아 나지나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 정도 다.
오후에 애완 동물 전문 매장 업자가 라이트 밴을 타고 고양이를 가지러 왔다.
영화 <장례식>에 나오는 반듯한 상복 차림을 한 사람이었다.
일단 애 도의 말을 했는데, 이건 인간들끼리 나누는 애도의 표시를 적당히 간략화한 것으로 상상하면 된다.
그러고나서 요금 얘기를 꺼냈다.
화장->납골 코스는 항아리 값이 포함되므로 2만 3,000엔이다.
라이트 밴 후미의 짐칸에서는 플 라스틱 의상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독일 셰퍼드의 모습도 보였다.
아마 '기린'은 저 셰퍼드와 함께 태워지겠지. '기린'이 라이트 밴에 실려 가고 나자 온 집안이 썰렁하게 느껴져서 나도 집사람도 남은 고양이도 안절부절못하고 말았다.
가족이라는 건-설사 그것 이 고양이라 해도-저마다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것으로, 그 한 귀퉁이가 무너지면 한동안은 기묘하게 균형이 뒤틀려 버리는 것이다.
집에 있어도 일 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서 요코하마에라도 갈까 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뚫고 역까지 걸어갔지만, 그것도 왠지 귀찮아져서 도중에 집으로 돌 아와 버렸다.
지금은 '뮤즈'와 '고로케'라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마이클'이나 '고 테쓰'란 이름의 고양이는 전국적으로 산더미같이 많을 것이다.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이란 게 나의 좌우명이다.
조만간 안자이 미 즈마루 화백에게 족자에 그렇게 써달라고 해서 거실에 걸어 두려고 생각하 고 있을 정도다.
글씨 밑에 철제 아령 그림 같은 게 들어가면 좋을 것 같 다.
어째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는 재능'이냐 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불러들이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불러들일 가능성은 일단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다고 해서 재능이 부쩍부쩍 늘어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노력과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체력 이 필요하고, 노력과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재능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불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인 것이다.
하기야 이런 사고 방식은 천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천재란 아무리 허 약하더라도, 그리고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훌륭한 작품을 창출해 내는 존재다.
의식적인 자기 훈련이란 천재에게는 인연 없는 작업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는 천재가 아니고, 나름대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건강이 소중하다.
대단한 재능도 없는 주 제에 병을 달고 다니는 거야말로 작가로서는 가장 불행한 경우라고 생각한 다.
하지만 이런 좌우명을 족자로 만들 것까지도 없이, 나는 상당히 건강한 인간이라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고, 10년 동안 의사를 찾아갔던 적 도 없다.
약도 먹지 않고, 몸 어딘가에 신경 쓰이는 증상이 나타난 적도 없 다.
어깨 결림, 두통, 숙취로 애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불면증은 20대 초 반쯤에 몇 번인가 경험했었던 같은데, 지금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두통이나 숙취, 어깨 결림이 실제로 어느 정도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짐작이 가지 않으니 동정심도 별로 일지 않 는다.
때때로 집사람이 "오늘은 머리가 아파요"라고 말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어도 "어어, 그래?" 하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다.
그런 건 반어인이 "오늘 은 아가미와 비늘이 스쳐서 아파요"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됐다고 는 생각하지만,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육체적 아픔,고통이란 건 정확하게 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에게 "넌 동정심이 부족해" 라고 비난받는데, 그건 당치도 않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동정심이 부족 한' 게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 증거로 치통이나 뱃멀미로 고 생하는 사람이나, 의자에 정강이를 세게 부딪힌 사람에 대해서 나는 항상 진지하게 동정하고 있다.
숙취라는 것도 이해가 잘 안 가는 고통 중의 하나다.
나는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매일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고, 때로는 다른 사람 들처럼 술에 만취되는 일도 있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숙취라는 건 단 한 번 도 경험한 적이 없다.
아무리 형편없이 취했어도 아침 햇살이 비치면 말짱 하게 깨어나는 것이다.
잘 이해가 안 가서 친구에게 가끔 "숙취란 게 어떤 건데?" 하고 물어 보 지만, 누구 한 사람 정확하게 묘사하고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튼 머리가 무겁고, 띵하고, 좌우지간 아무것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거야"라 는 정도의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소릴 해도 '머리가 무겁다'라는 게 어떤 상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포기하고 만다.
그 이상 자세한 설 명을 요구해 봤자 "그것 참 귀찮구먼, 숙취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 숙취 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턱이나 있겠어?"라는 푸념만을 듣기 일쑤다.
사 람들은 모두들 숙취 얘기만 나오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일전에 어느 곳에서 맥주를 몇 병인가 마신 뒤에 다른 곳으로 옮겨 와인 을 집중적으로 마시고, 상당히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져 잠을 잔 적이 있다.
이튿날 아침 일곱 시경에 눈을 뜨자 엷은 안개가 낀 듯 머리 가 멍했다.
그래서 문득 '이것이 가벼운 숙취란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밥 을 먹고 나서 12킬로미터쯤 달리고 돌아오니 그런 흐리멍덩한 증상이 말끔 히 사라져 버렸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이 친구야, 그런 건 숙취도 아냐.
숙취일 때 는 식욕 같은 건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을 뿐더러 애당초 달리겠다는 생각조 차 할 수 없는 거라구"라고 했다.
그러니 숙취라는 건 나에게 있어서는 영 원한 수수께끼다.
변비, 치질, 꽃가루 알레르기, 신경통, 생리통(물론 당연하지만), 현기 증, 식욕 부진 같은 종류도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다.
구역질, 설사, 치통, 피로감, 감기, 고소 공포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끼리 아픈 데 대 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는 건, 당사자들에게는 미 안하지만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적어도 건강한 사람들끼리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그건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닌 공감대의 질이 높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미있는 것은 치질이나 변비 이야기로, 본인은 굉장히 힘겨워하는 듯싶지만 목숨과 직접 상관이 있는 병이 아닌 만큼, 이야기가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비통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비통하긴 하지만 우습고, 우습긴 하지만 비통하다는 느낌은 건강한 몸으로선 경험하기 어려운 감흥이 다.
기묘한 인생 강요당하는 유명인 때때로 바의 스탠드 같은 데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으면 옆 사람이 누군 가에 대해서 하는 얘기를 듣게 되는 일이 있는데, 그런 얘기를 안 듣는 척 하면서 듣는 것도 퍽 재미있다.
소문의 대상은 내가 아는 유명인인 경우도 있고, 상사나 동료, 친구인 경우도 있는데 두 경우 다 나름대로 재미가 있 다.
가장 재미없는 것은 누군가를 칭찬하는 얘기로, "저기, 아무개 말야, 그 사람 참 대단해.
재능이 있어"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면 이쪽도 따분해져서 '빨리 험담이나 하지' 하고 바라게 된다. "그 자식 바보라니까, 진짜 멍청 하다구.
완전히 구제 불능이야" 하고 나오게 되면, 어차피 남의 일이니까 이쪽은 유쾌하기 짝이 없다.
몇 년 전에, 요코하마에 있는 '스톡'이란 재즈 클럽의 스탠드에서 한잔 마시고 있자니 옆자리에 앉은 샐러리맨은 듯한 젊은 두 사내가 줄곧 신교지 기미에(역주:여배우) 얘기를 하길래, 또 여느 때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었더 니, 느닷없이 "저기 말야, 무라카미 하루키란 작가 있잖아? 그 사람 말야" 하는 얘기로 바뀌어 그 다음은 듣지도 않고 허둥지둥 나와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신교지 기미에 얘기에서 아무런 맥락도 없이 내 얘기로 옮겨 갈 수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그럴 때는 정말 난감하다. "그 러면, 신교지 기미에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다른 것에 대해 얘기해 보 세", "뭐가 좋을까?", "소설 얘기나 하지", "젊은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뭐 읽은 거 있나?", "그러고 보니까"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나도 일단 경계 태세를 취할 수 있어 괜찮지만, 목구멍 밑에서 바로 위가 시작되는 식 으로 화제를 바꾸니, 그만 온더록 잔 가장자리에다 코를 부딪히는 일이 일 어나고 마는 것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아주 드물긴 하지만 안면이 없는 사람이 말을 걸어 오 기도 한다.
나는 텔레비전에 출연을 하지 않으니 극히 드문 정도에 그치지 만, 늘상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참 고역일 것이다.
잡지에 사진 정도 가 실리는 거라면 실물을 만나도 의외로 알아보지 못하지만, 텔레비전이라 는 것은 무척 생생하게 비추기 때문에 힘들 것 같다.
그런 이유로 해서 나 는 절대 텔레비전에는 출연하지 않는다.
가끔 텔레비전 출연 의뢰가 들어오 지만, "인형 옷을 입고 출연해도 괜찮으시다면 나가겠습니다"라고 농담을 하면, "그래도 좋으니까 나와 주세요" 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하기야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나와 친분이 있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도 한번 텔레비전에 나갔다가 그 뒤 로 여러모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이튿날 쉴새없이 전화가 걸려 오고, 이 런 저런 사람들에게서 "텔레비전에 나오셨지요" 하는 인사치레를 들었다고 한다.
텔레비전이라는 건 굉장히 무섭다.
뭐니뭐니 해도 문예지가 제일이 다.
문예지에 소설을 쓴다고 해서 전화가 걸려 오는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한번은 진구 구장 외야석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며 야쿠르트 대 주니치 전을 보고 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 "무라카미 씨, 사인 좀 해주세 요" 했다.
나는 진구 구장 외야 우익석에 오는 여자에게는 대체로 호감을 품고 있으므로 "좋아요" 하자, 그 여자는 "저기, 힘내라 야쿠르트 스왈로즈 라고 써주시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비교적 좋아한다.
소부센 전철 안에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말을 걸어 온 적도 딱 한 번 있다.
그럴 때는 나는 그저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타입이라 말 도 잘 나오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대단히 미안할 따름이다.
게다가 전철 안 에서 말을 걸어 오면 주위 사람들도 힐끔힐끔 쳐다보므로 무지하게 부끄럽 다.
야쿠르트 대 주니치 전 때처럼 텅텅 비어 있으면 나도 마음이 편하겠지 만.
아카사카에 있는 베르비라는 패션 빌딩의 대기실 의자에 부루퉁한 얼굴로 앉아 있을 때에(아내의 쇼핑 시간이 너무나 길어져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 온 적도 있다.
이때는 젊은 남자로, "무라카미 씨,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십 시오"라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프로 야구 뉴스>의 인터뷰 같다.
내친김에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롯폰기에서 젊은 커플이 말을 걸오 온 적도 있다.
오차노미즈의 메이지 대학 앞과 신주쿠에 있는 이세탄 백화 점 2층, 후지사와의 세이부 백화점과 오타루의 길모퉁이에서도 한 번씩.
오 타루에서 만난 사람의 말에 따르면, 홋카이도에서는 내 책이 비교적 많이 읽히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타루 역 앞의 상점가에서 나 같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는 정말 감탄하고 말았다.
그런 연유로 해서 하나 둘 꼽아 보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6년 동안 거리에서 안면 없는 사람들이 말을 걸오 온 것은 전부 여덟 번이다.
대개 1 년에 한 번 남짓한 비율인데, 이 '말을 걸어 온 빈도'가 나 같은 일에 종사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많은 수치인지 적은 수치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옛날에 모 가수가 살고 있는 맨션 옆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이 차에서 현관까지의 10여 미터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필시 팬들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심야 한 시가 지난 주위에 사람 그림자라곤 하나도 없을 때조차도 그렇게 하는 거였다.
유명인이란 상당히 기묘한 인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탈모와 스트레스 며칠 전 어떤 주간지로부터 <나의 20대>라는 난에 싣고 싶으니 20대 시절 에 찍은 사진을 한 장 빌려 달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지금도 그렇지만) 20대에 찍은 사진이라고는 거의 없 는데, 그래도 여기저기 뒤적이다 보니 대여섯 장 정도가 나왔다.
그런데 불과 10년밖에 안 된 사진을 보고 발견한 사실인데, 20대 시절보 다도 지금이 확실히 머리 숱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헤어스타일이 달라서 그 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아도 지금이 더 머리 숱이 많다.
부푼 데다가 밀도도 높다.
이발소에 다니는 횟수도 전보다 잦아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 숱이 많아졌다는 얘기는 별로 들 어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은 "옛날에 비해 머리를 쓰지 않게 돼서,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으 니까 그런 거 아냐?" 하고 쉽게 말해 버리지만, 아무리 별볼일 없는 소설이 라고는 해도, 소설을 쓰기 위해선 역시 그 나름대로 머리를 써야 하고, 머 리를 쓰면 스트레스도 쌓이게 된다.
문단이라든가 업계라든가, 세금이라든 가 대부금도 있으니, 작가라고 해서 느긋하게 마당에 내려앉은 참새나 바라 보며 "벌써 봄인가"라는 말이나 하고 있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머리를 쓰지 않는다는 식으로 간단히 결론을 내려 버리고 싶지는 않다.
나라고 해 서 이런 저런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어려움이 외모에 반영되지 않을 뿐 이다.
그렇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확실히 내 머리 숱이 늘어나기 시작 한 것은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부터다.
그렇다면 전업 작가가 된 게 내 생 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내 머리 숱이 많아진 비밀도 저절로 풀릴 것이다.
몇 가지 변화를 나열해 보면 다음 과 같다.
(1) 도쿄를 떠나 교외에서 살게 되었다.
(2) 다른 사람과 만나는 일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3)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4)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스스로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 다.
(5) 매일 운동을 하게 되었다.
(6) 접대로 마시는 술자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머리 숱이 적어지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 한마디로 결론을 내릴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 경우에는 이러한 생활의 변화가 머리카락의 상태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뒤집어 말하면, 등골 빠지게 소설을 쓰고 있지 않다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한때-5년쯤 전의 일이지만-나 역시 머리 숱이 상당히 준 적이 있었다.
그 무렵에는 사업상 이런 저런 말썽이 많아(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몹시 피곤하다), 그 때문에 머리카락이 계속해서 조금씨 빠졌었다.
욕실에 들어가 머리를 감으면 욕실 바닥의 배수구엔 언제나 기가 찰 정도로 많은 머리카락이 엉켜 있었다.
나는 워낙 머리 숱이 많은 편이라 처음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 나, 이윽고 목욕을 하고 거울 앞에 서면 머리카락 사이로 두피가 약간 보일 지경에 이르렀고, 그러는 사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머리 숱이 좀 준 거 아 니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자 나도 꽤 머리를 의식하게 되어 헤어스타일을 바꾸기도 하고, 헤어 토닉으로 정성껏 두피를 마사지하기도 했다.
탈모라든가 발기부전이라든가 하는 것은(후자는 아직까 지는 관계없지만) 비만이나 금연과 달리 스스로 암만 노력해도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당사자는 몹시 울적하다.
그러나 사람들이란 참으로 잔인해서, 본인이 신경을 쓰면 쓸수록 "괜찮 아, 괜찮아.
요즘엔 가발도 잘 나온다구"라든가, "하루키 씨는 머리가 벗겨 지면 벗겨진 대로 꽤 귀여울 거예요"라는 둥 정말 집요하다.
어느 한 쪽 귀 가 잘라져 나갔다거나 하는 얘기라면, 모두들 안됐다고 동정하지 앞에서 놀 리거나 하지는 않을 테지만, 탈모라는 건 구체적인 아픔을 동반하는 게 아 니니까 진지하게 동정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 젊은 여자들은 자신도 머리가 벗겨질 수 있다는 공포심을 갖고 있지 않은 만큼 이런 문제에 대해 서는 상당히 천진난만하다. "어머, 세상에.
정말 벗겨지잖아.
어디 좀 보여 줘요.
어머 두피가 보여.
와 싫다, 싫어"라는 식으로, 이런 때는 정말 화가 난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나를 둘러싸고 있던 귀찮고 불쾌한 상황이 개선됨에 따라 빠지는 머리카락의 양도 서서히 줄어들어 두세 달이 지날 무렵에는 머 리카락이 완전히 예전 상태로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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