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2편 (2/2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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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2편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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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상황 설정 자체에 상당한 무리가 있고 작품 자체가 뒤죽박죽이었지만, 뒤죽박죽인 만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끈질기고도 강인한 반전 영화로 완성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 각도 든다.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타입의 영화를 퍽 좋아한 다.
그 후 <젊은 사자들>의 비디오 테이프를 사서 다시 보았는데 역시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록키 4>나 <람보 2> 같은 훨씬 노골적인 반공 영화가 나온 지금으로선, 고상하게 비쳐지는 장면도 있다.
밀리어스가 너무 일찍 시도했 던 건 아니었을까.
나의 양복 변천사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복을 입은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지금도 생 생하게 기억나는데, 밴 재킷에 회색 헤링본(역주:삼목잎 모양의 줄무늬를 짜넣은 무늬) 슈트였다.
셔츠는 흰색 버튼다운이었고, 넥타이는 검은색 니 트.
아이비 전성 시절의 얘기다.
나는 헤링본이라는 무늬를 굉장히 좋아해서 맨 처음 양복을 산다면 이거 여야만 된다고 늘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헤링본 양복이란 건 열여 덟 살 난 남자에게는 별로 어울리는 게 아니었다.
헤링본을 입으려면 역시 나름대로 연륜이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로 구입한 양복은 결혼할 때 산, 은은한 올리브그린의 영국식 스 타일 스리피스로, 이것은-본인이 말하긴 좀 뭣하지만-퍽 잘 어울렸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머리가 길고 지금보다 한결 말랐으며, 얼굴에서는 나름대 로 굳은 결의 같은 걸 엿볼 수 있었다.
스물두 살 때의 일이다.
나는 취직이란 걸 한 적이 없으므로 세 번째로 양복을 산 것은 훨씬 나중 의 일이다.
스물아홉 때 우연히 응모한 <군조>라는 문예지의 신인상에 당선 (이라고 하나?)되어, 시상식에 나가기 위해 일부러 여름 양복을 산 게 세 번째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양복에 대한 동경,집착 같은 게 이미 말끔히 사라졌 으므로 되도록이면 값싸고 적당히 질 좋은 것을 사려고 마음먹었었다.
그 당시에는 나도 꽤 잘난 척을 했던 터라, 문예지 신인상 시상식 같은 데 나 가기 위해 촐싹대며 비싼 양복 따위를 살까 보냐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 금 생각하면 참 건방졌던 것 같다.
하긴 지금도 여전히 건방지긴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한테는 당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양복을 살까 하고 산책 겸 아오야마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걷 고 있자니, 옛날 밴 빌딩에서 도산 바겐세일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아니, 밴도 망해 버렸나, 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옛날에 유행하던 스리 버 튼의 면 양복을 팔고 있었다.
올리브그린으로 값은 1만 5,000엔, 굉장히 쌌 다.
그걸 사가지고 돌아와서 세탁기에다 빨아 구깃구깃하게 만들어 낡은 테 니스화를 신고 시상식에 나갔다.
지금 나의 양복장-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에는 한 벌의 양복밖에 없 다. '폴 스튜어트'에서 산 검은 양복뿐이다.
이것은 순전히 관혼상제용으 로, 아직 한 번밖에 입지 않았다.
앞으로도 양복을 살 일은 아마 없을 것이 다.
그런 귀찮은 옷은 입지 않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나는 생각 하고 있다.
값은 비싸지, 활동하긴 불편하지, 금방 스타일이 바뀌고, 드라 이 클리닝 비도 든다.
간혹 양복을 입고 나가고 싶기도 하지만 두 시간 정 도 걷다 보면, 아아 싫다, 이런 걸 입고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뼈 저리게 후회하게 된다.
양복은 너무도 부자연스런 옷이다.
넥타이를 맬 필요가 있을 때는 전부 블레이저 코트로 한다.
나는 브룩스 브라더스의 블레이저 코트를 좋아해서 이래저래 여섯 벌이나 사고 말았다.
넥타이를 매는 건 두 달에 한 번 정도니 좀 너무 많이 산 감도 들지만, 옷 값이란 게 거의 들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의 사치는 괜찮다 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더블 블레이저 코트를 입고 호텔 로비에 멍청히 서 있으면 플로어 매니저로 오해받는 일이 있다.
오사카의 로열 호텔에서는 세 번이나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났다. "어이, ...실 준비는 다된 거 야?"라는 말 따위.
그런 걸 알턱이 없잖은가? 양복 얘기와는 관계없지만, 나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 는다.
한번은 이케부쿠로의 도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데, 아르바이 트 종업원으로 착각을 했는지 높은 분인듯한 아저씨가 "이봐, 넌 왜 명찰을 안 달고 있는 거야!" 하고 야단을 쳤다.
하도 기가 막혀서 나도 얼떨결에 "옛!" 하고 있는 사이에 상대방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도부 백화점에 특별히 원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경험이다.
여담은 그만하고 양복 얘기로 돌아가자.
나 자신은 거의 양복을 입지 않지만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을 보 는 건 또 그 나름대로 꽤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려면 역시 연륜이 쌓여야 하고, 철학도 필요할 것이다.
나는 둘 다 없으니까 좀처럼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을 수가 없다.
미국 화장품 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던 고 찰스 렙슨 회장은 일생 동 안 다크블루 슈트만 입었다고 한다.
그는 빌 피올라반티라는 디자이너에게 약 200벌의 다크블루 슈트를 만들게 해서 그것을 차례대로 입었다고 하니 까, 여기까지 이르면 이미 철학의 경지를 뛰어 넘었다고 볼 수 있다. <에스 콰이어>지에 따르면 다크블루라는 색깔은 일종의 권위와 힘을 두드러지게 해서, 그것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 열심히 뛰고 있다!'라는 인상을 부 여한다는 것이다.
과연 당대에 렙슨 제국을 쌓아 올린 인물답게 색깔 감각 이 뛰어났다.
그 얘기를 읽고부터는 거리에 나서면 유심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다크블 루 슈트를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는 별로 없다.
확실히 다크블루 슈트를 세련되게 입기란 까다로운 일인가 보다.
나는 이발소가 좋다 최근의 젊은 남성들은 대부분 유니섹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는 것 같 지만, 나는 전부터 이발소 쪽을 좋아했다.
개성 없는 헤어스타일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용실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여자들 옆에 서 여자 미용사가 머리를 깎고 감겨 주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하기 때문이 다.
게다가 머리를 잔뜩 말고 있거나, 얼굴 면도를 하거나, 머리에 건조기 를 뒤집어쓰고 얼빠진 얼굴로 주간지를 읽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점이 오래 전부터 꽤나 신경에 거슬려서 한번은 여자 몇 사람 을 붙잡고 "미용실 옆자리에 남자가 있으면 싫지 않아요?" 하고 물어 봤더 니, 그녀들 역시 한결같이 "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줄곧 남녀 공학을 다녔으므로 여자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지만, 머리카락을 자를 때에 한해서는 역시 남녀가 따로 따로인 쪽이 편하다.
그래서 꽈배기 과자 같은 기둥이 서 있는 동네 이발소 를 죽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미의 문제지, "모름지기 남자 란 모두 이발소에 가야 한다"라고 확고하게 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혹시라 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발소가 붐벼서 곤란해질 것이다.
미용실에 가는 사람은 계속 미용실을 이용해 주었으면 한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의 단골 이발소는 센다가야에 있다.
나는 지금 후지사와에 살고 있으므로 두 달에 세 번 꼴로 오다큐센의 로맨스 카를 타 고 센다가야까지 머리를 깎으러 간다.
이래저래 가는 데만도 한 시간 반은 걸리니까 한가하다면 한가한 거고, 유별나다면 유별난 것이다.
후지사와에 살기 전에는 나라시노에서 살았는데, 그때도 역시 한 시간 반 씩 걸려 지금의 이발소에 다녔다.
소부센 쾌속보다는 오다큐 로맨스 카 쪽 이 운치도 있고, 값도 싸고, 애플 티도 마실 수 있으므로 나로서는 이쪽이 훨씬 편하다.
나라시노 전에는 센다가야의 이발소 근처에서 살았다.
그러니 까 그럭저럭 8년째 단골인 셈이다.
어째서 그렇게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이발소만큼은 끈질기게 바꾸 지 않는가 하면, 새로운 이발소에 가는 게 너무나 귀찮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발소에 가면 여러 가지 사항들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설명해야만 한다.
우 선 나는 회사원이 아니니까 그다지 단정한 머리형을 할 필요가 없고, 3주에 한 번은 머리를 깎으니까 그렇게 짧게 깎을 필요도 없다는 기본 방침을 이 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고는 세부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귀 위는 어느 정도 길이로 하고, 가르마는 어디쯤에 있으며, 수염은 깎지 말고, 매 일 머리를 감으니까 샴푸는 대충 한 번이면 되고, 헤어 리퀴드는 필요 없다 고 설명을 하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지쳐서 축 늘어지게 된다.
게다가 아무 리 설명을 해도 설명한 대로 깎아 준다는 보장도 없다.
아니, 그렇게 깎아 주지 않는다.
특히 지방 소도시의 경우에는 더욱 심해서 대개는 군인 아저 씨처럼 바싹 잘라 놓는데, 그러면 4~5일은 뿌루퉁해서 집에 틀어박히게 된 다.
이런 일은 몹시 난처하다.
그런 점에서 단골 이발소는 문을 밀고 들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의자에 털썩 앉기만 하면 잠에 빠져 있어도 언제나처럼 알아서 말끔하게 다듬어 준 다.
이렇게 편할 데가 있나.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이발소의 첫째, 이발사가 자주 바뀌지 않아야 한다.
종종 갈 때마다 이발사의 얼굴이 바뀌는 가게가 있는데 이래서는 이쪽도 마 음이 놓이지 않고, 그때마다 다시 설명을 새로 해야 하므로 단골 이발소에 다니는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사람이 들락날락하지 않 는 이발소는 나름대로 분위기란 게 있고 솜씨도 안정돼 있다.
이것은 초밥 집 주방장도 마찬가지다.
둘째로는 쓸데없이 자꾸 말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
전혀 얘기를 안 하는 것도 따분하지만, 나는 이발소에서는 멍청하게 있는 것을 퍽 좋아하므로 너 무 말을 시키면 피곤해진다. "이젠 봄이군요", "따뜻해졌죠"라든가 "꽃구경 은 하셨습니까?", "아뇨, 바빠서요"정도가 이상적이다.
내가 가는 이발소의 아저씨 중에는 조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가끔 경주 이야기를 짤막하 게 하곤 한다.
셋째는 품위 없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 놓지 말아야 한다.
요즘에는 오후 시간대에 주부들을 상대로 한 야한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서, 그걸 듣 고 있으면 정말이지 피곤하다. "우리 남편은요,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 고 있으면 항상 뒤에서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도 그게 싫진 않아서..." 하고 떠들어대면 머리 속이 어지러워진다.
요즘 주부들은 모두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사실은 NHK FM의 <한낮의 클래식>같은 프로그램이 백 뮤직으로 흐르는 게 이상적이지만, 뭐 이발소에서 브람스를 듣는 것도 약간은 속물 같으니까, NHK 제1방송쯤이 바람직하겠다.
NHK 라디오 프로그램은 이발소 정도에서밖 에 들을 수 없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꽤 재미도 있다.
듣다 보면 적어도 '세상은 넓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
퍼시 페이시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푸른 산맥>은 아오야마 미용실에서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오전 열한시 반쯤에 하는 소설 낭독도 이발소 의자에 앉아 듣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지금은 더욱 멀어져서 가는 데만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여전히 같 은 이발소에 다니고 있다.
퍼시 페이시스의 <푸른 산맥>은 중간에 썩 훌륭 한 포 버스의 응수가 있기도 하여, 상당한 열연이다.
내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 가끔 어떤 설문 조사에서 취미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난감해 하는 일이 있다.
제대로 답하면 독서와 음악이지만, 요즘에는 책도 읽지 않 고 음악도 듣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취미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귀찮아서 그럴 때는 대개 겸손하게-그렇지도 않나?- '무취미'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소설을 쓰게 된 뒤로는 독서가 일의 일환이 되어 버렸으므로 이건 이미 현실적으로 취미라고 부를 수 없다.
그래서 가까스로 음악만이 취미 영역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음악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취미로 남겨 본업이 되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고 있으면서 특정 분야를 피해 지나가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집에서 나말고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어느 누구의 지 도나 조언도 받을 수 없었다.
요즘과는 달리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책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튼 용돈을 모아 무턱대고 레코드를 사서 이해가 갈 때까지 그저 듣는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에 산 레코드를 지금 뒤적거려 보면 꽤나 두서 없이 사 모았구나 하고 스스로도 질릴 정도지만, 당시에는 그런 건 알지 못했으니까 싸게 파 는 레코드를 여기저기서 사 모아선 음반 면이 닳아 빠질 때까지 듣고 또 들 었었다.
젊은 시절에 들었던 연주라는 건 평생 귀에 달라붙는 것인 데다 몇 장 되지 않은 레코드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었으므로, 그 무렵에 산 레코 드는 지금의 나에게는 일종의 표준 연주가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글렌 굴드가 연주한 것을 내내 들었으므로, '3번' 하면 굴드의 연주가 머리 속에 탁 떠오르고, '4번' 하면 박하우스의 연주가 떠오른다.
훨씬 나중에야 박하우스가 연주하는 3번과 굴 드가 연주하는 4번을 들었는데, 그걸 듣고 있자니-연주는 물론 나쁘지 않았 지만-아무래도 안정감이 없었다. '3번은 공격적으로, 4번은 정통적으로'라 는 연주 기준이 머리 속에 콱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곡 15번과 17번만 해도 그렇다.
이 경우에 15번은 줄리어드 현악 4중주단이고, 17번은 빈 콘체르토 하우스 현악 4중주단이라 는 경이적인 결합이다.
들으면 아시겠지만, 이 두 연주 단체는 모든 면에서 극과 극을 이룬다.
줄리어드는 엄격하며 딱딱한 느낌이고, 빈 콘체르토 하 우스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15번은 엄격하고 딱딱한 곡 이고, 17번은 부드럽고 따뜻한 곳이다.
모차르트란 사람은 역시 굉장한 다 면성을 지닌 인물이었구나' 하고 오랫동안 믿었었다.
스물두 살이 지나 다른 레코드로 15번을 듣고는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도 15번을 듣고 싶을 때는 나도 모르게 줄 리어드의 레코드(물론 새로 산 것) 쪽으로 손이 가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이런 예를 일일이 들자면 한이 없다.
오로지 바겐 세일용 레코드를 닥치 는 대로 사 모아 온 결과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런 계통 없는 불균 형성이 음악을 듣는 재미를 오히려 두드러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묘하게 한 쪽으로만 취향이 치우치지 않았던 것은 옆에서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었 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대개 이런 식으로 우회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억척스레 밀고 나가는 성격이라, 무엇인가에 다다르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리고 실패도 수 없이 한다.
그렇지만 한번 그것을 몸에 익히고 나면 어지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이걸 딱히 자랑스레 떠드는 건 아니다.
이런 성격은 때때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이 그런 스타일을 고치려고 애써도 좀처럼 고 쳐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권해도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진지하게 권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왔으니 이제 와서 새삼 어쩔 도리가 없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일반적으로 음악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은 스무 살을 고비로 해서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물론 이해력이나 해석 능력은 훈련하 기에 따라 높아질 수 있지만, 10대 시절에 느꼈던 뼛속까지 스미는 듯한 감 동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유행가도 시끄럽게 들리게 되고 옛날 노래가 좋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 주변의, 왕년에는 록광이었던 청 년들이 차츰 "요즘의 록같이 시시한 건 들을 맛이 안 나요"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 기분은 이해하지만, 이러쿵저러쿵 그런 말만 늘어놓아 봤자 어쩔 수 없으므로, 나는 꽤 솔직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전미 히트 차트 같은 것에도 귀를 기울여서 귀가 노화되는 걸 방지하려 애쓰고 있다.
컬처 클럽 이라든가 듀란듀란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에 웸의 저 은근함은 비교 적 마음에 든다.
자동차 유감 나는 운전이란 걸 하지도 않고, 또 자동차라는 물건 자체에도 별흥미가 없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어쩐 일인지 운전을 하는 사람의 수가 굉장히 적 다.
대충 아는 사람 중의 30퍼센트 정도만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일본 총인구의 60퍼센트 가까이가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한심할 정도로 적은 숫자다.
어째서 이렇게 내 주변 사람들이 운전하지 않는가 하면, 이유는 참으로 간단하다.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면 불필요한 신경을 써야 하 고, 쓸데없는 돈이 들며, 술도 마실 수 없고, 세차니 차량 검사니 하는 자 질구레한 일들이 많아서 지하철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그야 홋카 이도 들판 한가운데 사는 사람이라면 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을 테지만, 도 쿄 근교에서 살아가는 데는 차가 특별히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 자신을 예로 들자면, 차를 갖고 있지 않아서 불편하게 느낀 적은 1년 에 한두 번 정도 뿐으로, 그 한두 번을 어떻게든 넘기고 나면-물론 넘긴다- 나머지는 전철과 택시를 타는 것과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야 뭐 사람에 따라 사정이 다르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모두들 앞 다투어 차를 갖고 싶어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불과 3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 없 이도 충분히 평화롭게 살았으니까 말이다.
이런 얘기를 자동차를 가진 사람에게 하면, 대개 "맞아요, 그게 제일이에 요, 차를 탈 필요가 없으면 차를 안 타는 게 좋죠"라는 대답에 돌아온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하철로 한두 구간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굳이 차를 몰고 간다.
운전을 안 하니까 이런 소릴 하는 거라고 한다면야 할말이 없지만, 운전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난 잘 모르겠다.
부지런히 주차 공간을 찾아 돌아다녀야 하고, 시간도 얼마 차이나지 않는데 그새를 못 참아 차선 을 바꿔 달리는 일 같은 건 나로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다.
차가 없으니 자동차 대금이라든가 주차 요금, 세금이라든가 기름 값, 수 리비 같은 게 들 리 없기 때문에, 그 대신으로 택시나 국철의 그린 차(역 주:특등 차)를 종종 탄다.
이게 또 이상한 일인데,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택시나 그린 차의 요금이 턱없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 서 내가 종종 택시나 그린 차를 탄다고 하면, "너, 그거 사치다"라고 말한 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도쿄와 후지사와 간의 그린 차 요금이라고 해봐 야 두 시간 반 정도 주차시키는 요금과 엇비슷하다.
한 시간 동안 느긋이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딱히 국철을 두둔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뭐, 이렇게 말하는 나도 조금만 더 젊었으면 역시 고급 승용차를 굴리며 드라이브하자고 여자를 꼬시며 돌아다녔을지도 모르니 큰소리칠 순 없다.
이런 일은 운과도 같은 것이라 조금만 달리 살았더라면 완전히 정반 대의 주장을 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널린 주장의 대부분은 결과적 으론 좋은 게 좋다는 정신 위에서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 에서 자동차 무용지물론을 전개하려는 게 아니라, 차가 없어도 별로 부자유 스럽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게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견을 타당성 있 게 설명하려 했던 것뿐이다.
그러니, 화를 내며 반론을 제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후지사와 거리도 여름이 가까워짐에 따라 차량이 점 점 늘고 있다.
주말이 되면 후지사와 교에서 에노시마까지 길이란 길은 차 량 행렬로 념쳐 나고, 좁은 길에도 꾸역꾸역 차가 밀려든다.
밤중에는 오토 바이가 내는 소음이 시끄럽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뒤에도 조깅을 하시 던 할머니 한 분이 차에 치여 돌아가셨고, 오토바이 소음으로 잠을 잘 수 없다고 항의 자살을 한 사람도 있다.
정말 안된 일이다.
내가 자동차에 대해 너무 신경질적인 탓인지도 모르지만, 차량이 늘어남 에 따라 일본 내 어디엘 가더라도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일이 극히 드 물게 되었다.
때때로 생각이 나서 에노덴을 타고 가마쿠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이젠 거리마다 온통 자동차라서 머리가 아파져 빨리 돌아와 버리고 만다.
교토 같은 곳은 옛날에는 그렇게 거칠고 시끄러운 곳이 아니었다.
세상에 자동차가 한 대도 달리지 않는 곳이 한 군데 쯤은 있어도 좋지 않 을 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와이어트업이 덧지 시티에서 사람들로부터 권총 을 압수했듯이, 담당자가 입구에서 차를 맡아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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