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들인 양은 수 백명의 환자들을 치료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세 번째로 그가 사들인 것은 수 백개의 징과 꾕과리, 북, 피 리, 그리고 거울이었다. 악교는 이것들을 사기 위해서 자신의 집과 전답(전답)을 비 롯한 모든 재산을 처분해야만 했다. 허나 그는 추호도 망설이 거나 아까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십 여일동안 긁어 모은 것들을 모두 가지고 깊 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대나무가지와 약재, 그리고 악기 등을 산더미처럼 가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무엇을 하려 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후에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점차 시일이 흐르자 그의 존재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갔고, 마침내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게 되 었다. 허나 한 사람만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바로 악교를 패배시키고, 그에게 다시 재활(재활)의 의 지를 불어넣어준 그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는 조립산이었다. 조립산이 다시 악교를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일 년후였다. 다시 만난 악교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폭음과 절망 으로 찌들었던 과거의 모습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 었다. 대신에 그는 야인(야인)처럼 수염과 머리를 가득 길렀고, 몸 에는 짐승이 털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털가죽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갈빛으로 그을려 강철같은 근육이 드러났다. 악교는 형형한 눈으로 조립산을 응시했다.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소." 그는 조립산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즉시 물었다. "내가 말한 사람을 데리고 왔소?" 조립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몸을 비켜섰다. 악교의 시선은 곧장 조립산의 뒤에 서 있는 백의청년에게로 고정되었다. 한동안 악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백의청년을 유심히 살펴보 았다. 그의 눈가에는 이내 흡족한 빛이 떠올랐다. 조립산이 데리고 온 인물은 모든 면에서 그의 기대를 충족시 켜 주었다. 그는 한창의 젊은이였고, 체구가 건장했으며 눈빛이 유성처 럼 맑았다. 특히 고집스럽게 다물어진 입매무새는 의지견정(의지견정)해 보였고, 단단한 턱은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악교는 고 개를 끄덕였다. "좋소. 과연 당신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료. 가서 일 년 후에 다시 오시오." 처음으로 조립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오래는 기다릴 수 없소. 석 달내로 끝마쳐 주시오." 악교의 눈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일 년이라는 것도 이 자의 재질이 최고중의 최고라는 가정 하에서 말한 거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십 년내로는 어림도 없 다고 말했을 거요." 조립산의 음성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그에 대해선 내가 더 자세하게 알고 있소, 석 달이면 그에 게는 결코 모자라는 시간이 아니오." 악교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 아무리 천하의 다시 없는 기재(기재)라 해도 석 달안에 나의 불괴연혼강기를 익힐 수는 없소." 조립산은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악교를 쳐다보다가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석 달 후에 다시 오겠소. 그때까지 그가 불괴연혼강기를 익 히지 못했다면 당신에게 다른 인재를 찾아 주겠소." 악교는 멍하니 멀어져 가는 조립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쓴웃음을 지으며 고 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고집과 광오한 기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군." 그때 이제껏 아무 말도 없던 백의청년이 담담히 웃으면서 입 을 열었다. "그엑게 그런 기질이 없다면 그는 더 이상 조립산이 아닐 것 이오." 악교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옳은 얘기다. 저게 바로 조립산다운 점이지." 그는 백의청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그를 잘 알고 있느냐?" 백의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 은 없을거요." 악교는 고개를 갸우거렸다. "아까 그도 그런 말을 하더군. 너는 대체 누구냐?" 조자건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빙긋 웃었다. "나는 마침 그의 친동생이오." 이, 기 악교는 외문무공에 관한한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인자(천 하제일인자)였다. 그는 천하에 산재해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외문무공을 익혔 으며, 그 수는 무려 서른 여섯 가지에 달했다. 한 사람이 한 방면의 무공을 그정도로 익힌 예는 광활한 무림애서도 일찍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기인(기인)중의 기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외문무공의 단계는 모두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가장 아래 단계의 무공들로는 철포삼(철포삼), 십삼태보횡련 (십삼태보횡련), 금종조(금종 )를 꼽을 수 있다. 이 단계의 무공들은 피부를 단단하게 할 수는 있지만 내장을 보호하지 못 해 내가중수법(내가중수법)을 만나면 여지없이 격파당하고 만 다. 더구나 각기 조문( 문)이라고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서 이 조문을 격중당하면 중상을 입거나 즉사해 버릴 수가 있다. 다음 단계는 육신갑(육신갑)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몸의 피부를 갑옷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경 지이나 철포삼 등과 다른 점은 몸에 치명적인 조문이 없다는 것이다. 이 육신갑을 이루어야만 진정으로 외문무공에 입문(입 문)했다고 할 수가 있다. 육신갑의 대표적인 무공으로는 횡가철문전(횡가철문전)을 꼽 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기공(기공)을 이루어야 한다. 기공이란 기(기)로써 몸을 보호하는 경지로, 단순히 육체적 인 노력만으로 익힐 수 있는 철포삼이나 육신갑과는 전혀 차원 이 다른 종류였다. 기공을 이루어야만 내가중수법을 당해도 견 뎌낼 수가 있다. 악교는 기공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나한기공(나한기공)을 익 혔다. 기공을 극치에 이르도록 연마하면 기를 체외로 뿜어내어 하 나의 보이지 않는 벽(벽)을 만들 수가 있다. 이것을 강기( 기)라고 한다. 이 강기는 비단 자신만을 보호해 줄 뿐 아니라 남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외문무공을 이 강기일식( 기일식)의 단계까지 연마한 사람은 백 년내로 열 명도 되지 않았다. 외문무공의 마지막 단계는 전설상의 경지인 금강불괴(금강불 괴)이다. 내가무공(내가무공)을 극치로 연마해도 금강불괴에 이를 수 가 있다. 사실 이 금강불괴야 말로 무공을 익히는 모든 무림인들의 꿈 이며 최후의 목표였다. 무림역사상 금강불괴에 도달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악교가 팔 년동안 폐관하여 만들어낸 무공은 불괴연혼강기라 했다. 이것은 단순히 강기를 일으켜 전신을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 서 인간의 혼(혼)까지 단련하는 것이었다. 악교는 이미 육체적으로 터득할 수 있는 외문무공을 모두 완 성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조립산의 일격에 맥없이 쓰러지고 말 았다. 삼 년동안 그 이유를 숙고(숙고)한 끝에 악교는 한 가지 결 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육체적인 수련은 한계가 있 고, 그것을 뛰어넘으려면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악교는 그것을 정신(정신)의 단련이라고 믿었다. 육체와 정 신이 혼연일체(혼연일체)가 되어야만 비로소 최상의 무공이라 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악교는 이 정신을 단련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오년 후에 그 방법을 완성해 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정신, 즉 혼(혼)을 강기에 도입하여 어 떠한 공격으로부터도 자신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종국에는 금강 불괴를 이룩하는 것이다. 불괴연혼이란 바로 혼을 단련해서 금강불괴를 이룩한다는 뜻 이었다. 이 불괴연혼강기는 기존의 어떠한 외문무공에서도 찾 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심오한 경지를 담고 있었다. 때문에 다 른 외문무공을 익힌 사람은 이 전혀 새로운 무공에 적응을 할 수가 없다. 마치 이미 색(색)이 칠해진 종이 위에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또한 이것을 익히려면 극도의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한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었다. 불괴연혼강기는 강신(강신), 연혼(연혼), 그리고 불괴(불괴) 의 세 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강신이란 육체를 최고의 경지까지 단련하는 것이다. 그 방법 은 우선 많이 맞는 것이었다. 조자건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우뚝 서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반경 삼 장 정도되는 협소한 석실이었다. 이런 좁다란 석실에서는 제대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것이 다. 어느 한 순간, 쉬익! 바람을 가르는 에리한 음향과 함께 어디선가 길다란 물체 하 나가 빠른 속도로 그의 몸을 후려쳐 왔다. 조자건은 자신의 등쪽으로 차가운 기운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으나 꼼짝도 않고 우뚝 서 있었다. 쫘악! 비단폭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으음......" 우뚝 서 있던 조자건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의 등줄기에는 어느새 시뻘건 핏자국 하나가 선명하게 새 겨져 있었다. 방금 그의 등을 강타하고 지나간 것은 회초리같 이 가느다란 대나무였다. 대나무의 길이는 이 장에 달했고, 그것이 쏘아져오는 속도 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좁다란 석실에서는 도저히 날아오는 대나무를 피할 수가 없었다. 쫘악! 다시 어둠 속에서 대나무 하나가 불쑥 나타나 그의 어깨에 길다란 핏자국을 만들어 놓고 사라졌다. 대나무에는 막강한 힘이 담겨 있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자 국이 갈라 터질 것 같았다. 그런 대나무가 한 치의 사정도 없 이 알몸뚱이를 정면으로 가격했으니 그 고통을 말해서 무엇하 겠는가? 그런데도 조자건은 인상을 찌푸리며 가끔 짤막한 신음만을 토해낼 뿐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다. 순식간에 그의 몸은 예고 도 없이 날아드는 수십개의 대나무에 의해 피투성이가 되어 버 렸다. 쫘악! 쫙! 흡사 수십, 수백 개의 채찍이 훑고 지나간 듯 그의 전신은 붉은 흉터로 얼룩졌다. 아니, 가늘고 길다란 대나무는 채찍보다 오히려 더욱 매서웠 다. 대나무란 놈은 기이한 놈이었다. 그것은 휘어질 지언정 부러 지지 않고 쪼개질 지언정 갈라지지 않는다. 다른 회초리는 일정시간 사용하면 부러지거나 잘라져 쓰지 못하게 되지만 대나무로 만든 회초리만은 그렇지 않았다. 쓰면 쓸수록 대나무 회초리는 잘게 쪼개져 더욱 무서운 위력을 발휘 하는 것이다. 또한 가죽으로 만든 채찍이 주로 피부에 상처를 입히는 반 면, 대나무 회초리는 근육과 혈맥에 강한 충격을 준다. 그 차 이는 간단한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대나무 회초리의 날아드는 속도와 힘은 아주 규칙적이었다. 대나무 회초리는 조자건의 전신이 단 한군데도 성한 곳이 없 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겨우 멈춰졌다. "으음......" 조자건은 이미 혈인이 된 채 바닥에 누워 사지를 꿈틀거리고 있엇다. 그때 석실의 문이 열리며 악교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보니 대나무는 그가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휘 두른 것일까? 그는 벌레처럼 꿈틀대면서도 억지로 일어나려는 조자건을 한 참 동안 바라보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약실로 들어가서 몸을 씻어라. 한 시진 후에 다시 시작한 다." 조자건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석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악교의 눈에는 기이한 빛이 일렁거리고 있 었다. (정말 끈질긴 놈이다. 다른 사람같으면 최소한 서너 번은 기 절했을텐데 버티어 내다니......과연 조립산의 아우답군.) 그는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석실의 한쪽 구석으로 다가갔 다. 그곳에는 수백 개의 대나무 다발이 활처럼 휜 채로 묶여 잇 었다. 그 다발을 묶은 끈들은 작은 구멍을 통해 밖으로 연결되 어 있었다. 이제보니 악교는 밖에서 이 끈들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대나 무를 쏘아보냈던 것이다. 사람이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게 되고 속도도 떨어질 것 이다. 허나 이런 장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나무의 날아드 는 속도와 힘이 일정했던 것이다. 대나무들은 엄지손가락 굵기에 길이는 대략 이 장 남짓 했 다. 거의 원형으로 휘어진 대나무들이 풀어지며 세차게 휘둘러지 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설사 황소라 해도 그 대나무에 맞으면 살이 갈라지고 뼈가 으스러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조자건은 벌써 열흘째 이 가공할 대나무 세례를 맞 으며 견디고 있었다.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근골(근골)이 남달랐고, 그 의 참을성이 사막의 도마뱀처럼 강인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악교가 특수하게 제조한 약수에 힘입은 바가 컸다. 조자건은 온 몸이 칼로 저미는 듯 고통스러웠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틀대는 걸음으로 석실을 나와 뒤 로 돌아갔다. 석실의 뒤쪽에는 다시 조그만 석실이 있었다. 석실안에는 그 리 크지 않은 연못이 있었다. 기이하게도 연못의 색깔은 거무 틱틱했다. 그것은 연못이 아니었다. 바로 악교가 특수제조한 약수(약 수)였던 것이다. 그 약수는 스물여섯 가지의 진귀한 약재를 혼합한 것으로, 찢어진 살을 돋게 하고 근육과 뼈를 단단하게 하는 점에서는 천하의 어떤 것도 따를 수 없는 신묘함을 지니고 있었다. 조자건은 천천히 약수 속으로 들어갔다. 상처 사이로 약수가 스며들어 참기 힘든 고통이 뒤따랐다. 허나 익숙해서인지 금새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그는 약수 안 에 편하게 몸을 뉘이며 두 눈을 감았다. 그가 약실로 들어가는 기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그의 피부 는 수백 번이나 갈라터졌다가 다시 아물었고, 그러는 와중에 점차 기이한 윤기를 띄게 되었다. 대나무를 맞아도 더이상 핏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엷은 자국 만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그 자 국도 시일이 지날수록 점차 희미해졌다. 허나 그럴수록 그의 몸은 점차 강인해져서 나중에는 대나무 가 그의 몸을 후려쳐도 상처는 커녕 오히려 대나무가 튕겨나가 부서져 버렸다. 그제서야 학교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제 강신의 수련은 끝났다. 내일부터는 연혼으로 들어가겠 다." 그것은 조자건이 수련을 시작한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었 다. 연혼이란 혼을 단련하는 것을 말한다. 연혼을 위해서는 조금시끄러운 방법이 필요하다. 꽈꽝! 꽝! 째째쨍! 삐이익! 삑!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었다. 적어도 귀머거리가 아니라면 이와같은 엄청난 소음 속에서는 그대로 고막이 터져 미쳐 버리고 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 수천 개의 북과 꽹과리, 징, 피리 등 이 오 장도 안되는 좁은 석실 안에서 일제히 울려퍼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석실의 벽은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져서 소리를 흡수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증폭시키는 작용을 했다. 차라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너 무도 소리가 커서 어떤 소리가 울리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조자건은 그 소음의 소용돌이속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허나 단정이라는 말은 지금의 그에게는 별로 어울리지가 않 았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몸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그가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아무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너무도 시끄러운 소리때문에 머리속이 그대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귀라도 막을 수 있으면 좋으련 만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두 손을 깍지껴 가슴 부위에 얹은 채 한 가지 구결을 암송해야 했기 때문이다. 구결은 정확히 천 개의 글자 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구결의 전반부 백 글자는 불문(불문)의 금강심법(금강심법) 이었다. 다음 백 개의 글자는 도가(도가)의 청정무구결(청정무 구결)이었고, 그 뒤로 유가(유가)의 한령심법(한령심법), 속가 (속가)의 내첩지력(내첩지력), 마도(마도)의 강룡탁비혼(강룡 탁비혼) 등의 구결이 이어져 있었다. 그것은 천하무림에 산재 한 수 많은 심법들 중 가장 위력이 뛰어나고 심오한 열 가지의 심법 구결이었다. 그 구결들은 하나같이 까다롭기 그지없어 범인(범인)들은 백 년을 외워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하물며 머리가 빠 개질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의 와중에서 이 구결을 암송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조자건은 정신을 집중하여 구결을 암송하려 했으나 도저히 열 글자 이상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석실의 사방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북소리와 꽹과리, 피리소 리들은 아무렇게나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도 엄연한 하나의 음악이었다. 항마신고(항마신고)와 음 마상문경(음마상문경), 경혼소(경혼소), 구천신마적(구천신마 적) 등 최고의 음공(음공)을 담고 있는 이 음악은 이미 오래전 에 절전(절전)된 것으로 알려졌던 풍도악부(풍도악부)였다. 풍도란 곧 저승을 말한다. 듣는 사람은 누구나가 저승으로 지행한다고 해서 풍도악부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 위력이 너무도 살인적이고 결과가 참 혹했기 때문에 무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것을 펼치는 것 을 금지시켜 지는 백년 동안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천여개의 악기가 불어내는 풍도악부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 저히 견뎌낼 수 없는 가공할 위력을 담고 있었다. 조자건이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보호하는데 천하에서 가장 탁월한 열 가지 심법구결을 암송하고 있지 않다면 그는 진작에 피를 토하며 즉사하고 맣았을 것이다. 허나 그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구결암송을 중지한다면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건 행위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었 다. 계속 구결을 암송하든지 아니면 풍도악부에 의해 저승으로 가든지 하는 두 가지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무 모한 방법이었지만 또한 혼을 단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기도 했다. 혼이란 곧 정신이다. 정신은 마음에서 나오며 어떠한 상태에서도 부동지심(불동지 심)을 이루어야만 비로소 혼 또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불괴(불괴)란 최고로 단련된 육체와 정신을 합일(합일)시켜 어떠한 무공에도 부서지지 않는 최강의 신체(신체)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천하에서 가장 희귀한 물(수)이 필 요하다. 욕조는 한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커 보였다. 넓이도 다른 욕조보다 훨씬 넓었지만 무엇보다도 아주 높아 서 왠만한 어른이라면 그 안에서 있어도 거의 가슴까지 닿을 것 같았다. 욕조속의 물은 티하나 없이 맑았고, 물은 아주 시원하고도 깨끗했다. 누구라해도 이런 큰 욕조에 담겨 있는 맑은 물을 본 다면 첨벙 뛰어들고 싶은 욕구를 느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 자건은 일단 행운아였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머리끝까지 물속에 담근 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허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를 부러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무나 투명해서 욕조 바닥까지 똑똑히 보이는 이 물은 보통 물이 아니었다. 이것의 이름은 왕수(왕수)라 했다. 왕수는 천하의 어떤 독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었다. 그것은 이 왕수가 엄청나게 무겁기 때문이었다. 한 방울의 왕수는 그 것보다 백 배나 큰 철보다 오히려 더 무겁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왕수를 마시면 살 수가 없다. 왕수가 몸 에 들어가면 그 엄청난 무게때문에 내장을 비롯한 혈맥들이 모 두 터져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조자건의 전신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왕수에 잠겨 있었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욕조에 들어가는 즉시 왕수의 무게에 짖눌려 짜부라들고 말았을 것이다. 허나 조자건은 달랐다. 그는 비단 몸이 짜부라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숨을 쉬지 않 고도 그 속에서 견딜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가 불괴연혼강기 를 익혔기 때문이었다. 불괴연혼강기를 익히게 괴면 숨을 쉬지 않고도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몸 자체에 기이한 강기벽( 기벽)이 생겨 왕수가 그의 몸에 닿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왕수는 천하에서 가장 무겁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신체의 각부분이 골고루 강한 압력을 받는다. 그 압력의 세기 는 제 아무리 막강한 무공이라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불괴연혼강기를 끌어 올려야만 한다. 만약 단 한순간만이라도 소홀히 한다면 그의 전신은 그대로 짜부라들고 말 것이다. 끊임없이 고통을 참으며 불괴연혼강기를 끌어올리는 동안에 그의 정신과 육체는 자연히 혼연일체(혼연일체)가 되어 어떠한 상태에서도 불괴연혼강기가 그의 몸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즉, 그가 의식하고 있던 의식하지 않던 불괴연혼강기는 항상 그의 몸에 펼쳐져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조자건이 불괴연혼강기를 펼쳐내고 있는 이상 왕수는 그를 어쩔 수가 없었다. 허나 강기벽이 왕수의 무게마저 제거해 주 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온 몸으로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이미 강신으로 인해 피부가 강철같이 단단해 지지 않았다면 그의 살은 쩍쩍 갈라터지고 말았을 것이다. 또한 연혼의 단련 을 받지 않았다면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 버 렸을 것이다. 악교는 욕조 밖에서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조자건을 뚫어지 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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