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도, 잘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2> 부산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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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요약)
본 글은 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며 ‘북극항로 시대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해양수산부 등 정부 기관과 해운기업, 금융이 부산에 모여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1> 북극항로
북극항로가 열리면 우리는 부산을 통해 ‘북극항로 시대 동북아 환적 항만’, ‘극지 해양 기자재 생산 기자’ 등의 이득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환적항만의 경우, 벌크선은 환적을 하지 않아 대상이 아니며, 컨테이너선은 경제성 문제로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북극항로 이용이 활성화 된다고 해서 반드시 부산이 동북아 중심 환적항만이 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싱가포르가 지리적 이점에 더해 급유, 선박 유지보수 등 해운 원스탑 서비스를 제공해 환적화물을 유치하듯이, 부산도 지리적 이점에 더해 극지 해양 기자재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성을 더해야 북극항로 시대에 환적화물을 추가로 유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취하는 정책은 해양수도 부산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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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 집중
정부는 해양수도 부산을 만들기 위해 북극항로를 거론하면서 해양 관련 부처, 기업, 기관 등을 부산으로 집중하려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인, 그리고 장관 선임이 매우 유력한, 전재수 의원(더불어민주당, 부산 북구갑)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산을 전략기지로 삼아 해양강국을 만들겠다”, “행정기능을 총괄하는 해수부, 사법 기능을 총괄하는 해사전문법원, 경쟁력 있는 해운선사, 여기 투자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집적화돼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전재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부산에서 해수부, HMM 이전 공약을 내세우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며, 그 뜻을 함께하는 차원에서 해수부 장관으로 임명을 앞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말과 같이 부산에 모든 것을 모으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1)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해양수산부는 영해 수호 및 해양 발전을 목적으로 1996년 설립되었고,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해체되었으나 2012년 대선 이후 재설치 된 부서입니다. 기획조정실, 해양정책실, 수산정책실, 해운물류국, 해사안전국, 항만국 등으로 조직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에서 바다와 관련된 대부분의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 해양수산부입니다. 부산을 비롯해, 인천, 광양, 평택, 울산 등 수많은 항만은 물론, 그 항만을 드나드는 전세계 선사들의 수많은 선박들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보다 더욱 촘촘히 퍼져 있는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는 곳이 해양수산부입니다.
부산이 아무리 대한민국 최대 항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해양수산부의 주업무가 되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부산이 중요해서 가까이서 지켜보다겠다고 한다면, 나머지 부문과 지역들을 도외시하겠다는 뜻이고, 멀리서도 잘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면 반대로 부산으로 이전하지 않아도 해양수도 정책을 잘 이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해수부가 이전해야 하는 당위성은 되지 못합니다. 정말로 부산이 중요해 인력이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면, 전략전초기지에 맞는 신설 TF 혹은 신규 부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2) 해양수산부의 역할
사실 부산을 가도 상관은 없습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고 한다면 한 번 옮겨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양수도 부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히려 해수부는 세종에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극지 해양 기자재 생산 기지’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조선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업을 해야 합니다. 연관된 항만 배우 인프라 개발을 위해서는 국토교통부와 협을 해야 하며, 본연의 업무 중 섬 관련 업무를 위해서는 행정안전부와 협의도 지속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기획재정부 등 협의를 해야 하는 부서가 세종에 있으며, 사실 이러한 일을 잘 하라고 세종이 만들어진 것이죠.
전재수 의원도 이러한 부분을 의식했는지, 저 기능을 해수부가 받아서 부산에 가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오히려 해수부의 고립으로 유관 업무의 확장 가능성을 틀어 막게 될 수 있습니다. ‘너희가 필요한 거 가져갔으니 알아서 해라’가 될 가능성이 높죠. 차라리 저 업무를 가진 부서들과 협의를 통해 여러 부서가 동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장기적 동력을 구축하는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세종에서 해양에 대한 로드맵을 제대로 그리면, 그 실천을 위한 실행 조직은 부산에 조직될 것이기에 부산 지역 발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개연성도 있습니다. 1000명이 되지 않는 해수부 직원의 부산 이주 보다도, 순수하게 일자리를 신규 발생시키는 조직 신설이 부산 발전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3) HMM 본사 이전
해수부와 함께 주요하게 떠오르는 것은 해운기업 HMM의 본사 부산 이전 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산업은행은 옮겨 올 수 없으며, 대신 해수부와 HMM 등을 이전해 부산의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부산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마다, 전재수 의원이 해수부 이전 등 해양 정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짐없이 거론되는 회사가 바로 HMM입니다. 그렇다면 HMM은 어떤 회사이며, 왜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고, 그것이 해양수도 부산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4) HMM의 주인은 정부?
맞는 말입니다. HMM의 지분은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72%를 소유하고 있으며, 국민연금과 신용보증보험 등의 보유 지분을 합치면 물경 77%에 달하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신 현대상선 시절, 사실상 부도가 난 HMM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회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영구채라고 하는 채권의 형식으로 지원을 했고, 이 채권은 순차적으로 전부 주식으로 전환되게 됩니다. 4억주 정도였던 HMM의 주식은 현재 10억주를 넘어서며, 시가 총액은 24조를 넘어섭니다. 코로나 시절 호실적으로 인해 현금성 자산은 15조원을 넘어서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계열사가 거의 없는 단일 기업임에도 공정위 순위 17위에 오를 정도의 규모로 정부 주도 기업 재건의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문제는 정부 지분이 너무 많다 보니 매각이 어렵습니다. 지분 전량이 아닌 50%+1주를 매각해도 매수자는 10조가 넘는 자금이 필요합니다. 사실 상 국내에서 이 정도 금액을 내놓을 수 있는 재벌 그룹은 손에 꼽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해외 매각을 하자니 굳이 국내 해운업 경쟁력을 위해 살려 놓은 이유가 무색해지며, 펀드는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 정부는 성공적으로 기업을 살려 놓았으나 엑시트를 통한 수익 실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HMM의 주인은 현재로선 정부가 맞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HMM을 공기업화 하거나 경영을 하기 위해 취득한 지분이 아닌, 기업 재건 과정 속에서 취득한 것으로 향후 민영화를 해야만 하는 지분인 것입니다. 즉, 주인이 아니라 주인 권한 대행에 가까운 상황이며, 권한 대행이 경영에 주요한 판단을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4) HMM은 부산 기반 기업?
그래도 HMM은 해운 기업이니 본사가 부산에 있는 것이 경쟁력 차원에서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부산 지역 기반 언론에서 그런 말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HMM의 사업 구조를 보며 이 논리가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HMM은 앞선 1편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원양 컨테이너 해운업을 영위하는 회사입니다. 모든 해운업이 그러하지만 원양 컨테이너 해운업은 내수 시장이라는 개념이 없는 시장입니다. 무궁화호 같은 노선 수십개를 전세계에 걸쳐 운영하는 산업이며, 우리나라 선사가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것과 같이, 세계 모든 선사가 우리나라에 기항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HMM에게 국내 시장 비중은 10~15%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다수의 수익은 해외 고객의 화물을 해외 항만에서 운송하며 창출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연근해 선사는 부산 및 국내 항만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부산항의 비중이 크지만, 전 세계를 사업 대상으로 하는 HMM에게 부산은 One of them인 것입니다.
본사의 역할은 네트워크 관리, 고객 관리, 재무, 금융 등 뇌에 해당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부산과 같은 사업장에서는 현장에서 필요한 컨테이너 운송 관리를 수행하는 손발의 역할입니다. 이 두 역할은 모두 중요하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적절한 곳에 위치해야 합니다. 부산에 가도 해외 조직 관리가 문제가 없다면, 서울에 있어도 부산의 관리에 문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HMM의 서울 본사 직원은 약 800여명에 불과해 부산 인구 유입 효과 및 일자리 창출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우며, 연간 세수 역시 최대 70억원 미만으로 부산시 1년 예산이 16.7조원이라는 감안하면 크게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5) 북극항로는 명분일 뿐, 결국은 부산 민심 잡기
사실 제가 처음 썼던 글의 제목은 ‘북극항로, 대왕고래와 같은 대국민 사기극이 될 것인 것’였습니다. 나름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지만, 제 손을 떠난 글을 보자마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군요. 저런 자극적인 제목으로 눈을 어지럽힌 점은 다시 한 번 사과 드리겠습니다.
첫 제목을 저렇게 지은 이유는, 이재명 정부와 전재수 의원 등에게 북극항로는 명분일 뿐 실제로는 부산 지역의 표심을 잡기 위한 무리수를 강행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해수부든 HMM이든 부산으로 옮겨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최선의 수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악수는 아닌 수가 되어야 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불확실한 가능성을 기대하기에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수부와 HMM의 손해가 명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모습이 무언가 불안합니다.
특히 제가 우려하는 부분은 민간기업을 이전하겠다는 공약과 추진 과정에서 불필요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초 HMM 부산 이전 공약을 내세울 때, ‘직원들이 동의했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직원들은 동의한 바가 없다고 하자, ‘직원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하겠다’고 강한 어조로 말을 바꿨습니다.
전재수 의원도 “다수 노조인 해상노조가 찬성했다”고 했지만, 해상 노조는 다수 인원도 아니고 찬성한 바도 없었습니다. 시중에 해상노조가 찬성했다고 알려진 것이 저 전재수 의원의 발언 때문이지 어디에도 해상노조가 찬성했다고 의사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부산은 중요한 전략지이긴 하지만 그 표심을 얻기 위해 기존에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 같아, 거짓이 거짓을 부르는 상황이 되어가는 것 같아 저는 그 부분이 가장 우려가 됩니다.
(6) 마치며…
짧게 줄인다고 줄이면서 썼음에도 내용이 너무 길어져 이만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용두사미는커녕 꼬리없는 뱀대가리 같은 글을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은 그렇다면 저렇게 무리하지 않고도 해양을 발전시키고, 부산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제 개인적인 의견도 담고 싶었지만, 이번 글은 [표심을 잡기 위한 무리한 정책은 화를 부를 수 있다] 정도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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